폐지 줍는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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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사전에 직업은 ‘생계 유지를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계속 종사하는 일’로 설명돼 있다. 부업은 ‘본업 외에 여가를 이용해 갖는 직업’이다. 아르바이트는 ‘본래의 직업이 아닌, 임시로 하는 일’이다.

독일어인 아르바이트는 부업으로 순화된 뒤 둘의 사전적 의미는 같아졌다. 하지만 현실에선 뉘앙스가 다르다. 가령 학생들 사이엔 부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로 쓸 뿐이다.

특히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겐 이런 구분이 의미 없다. 직업이자, 부업이자, 아르바이트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니 직업이다. 여가를 이용해 갖는 직업이기에 부업이다. 임시로 하는 일이니 아르바이트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일을 하는 노인들이 늘었다. 대부분은 먹고살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

▲동네에서 손수레에 폐지를 잔뜩 싣고 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폐지를 줍고 고물상에 내다파는 노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 이후다. 학자들은 이를 한국만의 현상으로 바라본다. 세계 어디에도 수많은 노인들이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노인이 전국적으로 1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2782명, 서울 2363명, 경남 1234명 순으로 많았고, 제주는 146명으로 파악됐다.

이들의 동선을 추적했더니 하루 평균 이동 거리가 12.3㎞이었다. 11시간이 넘도록 짐수레를 끌어도 하루 일당은 1만428원이 고작이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948원. 올해 최저임금 9160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종일 일해봐야 입에 풀칠할 정도의 액수다. 게다가 때때로 찻길을 가로지르기도 해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그나마 손수레를 끌 힘이 있을 때다. 최근엔 젊은 실업자들도 가세한다니 노인에겐 무서운 경쟁자다. 차 조심, 사람 조심을 다 해야 할 판이다.

폐지 줍는 노인의 규모와 실태를 파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열악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그만두고 싶어도 생존을 위해 폐지 줍는 노동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기업과 연계하거나 공공형 일자리로 끌어안는 대안이 나와줘야 할 것이다. 노인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빈곤이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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