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에 놓인 조국 지킬 강병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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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근·현대 역사문화 녹아있는 대정
한국전쟁 당시 육군제1훈련소 설치
신병 양성, 서울 재탈환 등 반격 발판
공군사관학교 대정초서 생도 양성
모슬포서 1953년 창설된 제29사단
태권사단·주먹사단·익크부대로 불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1951년 3월 대정읍에 육군 제1훈련소를 창설했다. 사진은 제1훈련소 인근에 설치돼 있는 평화의 터 상징탑.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1951년 3월 대정읍에 육군 제1훈련소를 창설했다. 사진은 제1훈련소 인근에 설치돼 있는 평화의 터 상징탑.

 

육군 제1훈련소와 숙영지 그리고 공군사관학교 훈적비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에서는 19513월 일본군이 남긴 모슬포 대촌병사를 이용해 육군 제1훈련소를 창설(소장 백인엽 준장)했다. 10만 명 수용규모의 신병 훈련소였던 모슬포 제1훈련소의 또 다른 명칭은 강병대(强兵臺)이다.

한라산 서남부 일대가 제1훈련소의 훈련장이 됐으며 여기서 훈련한 병력으로 전선을 유지했다. 휴전 이후에도 제1훈련소는 존속되다가 교통 등의 불편으로 1956년 논산으로 옮겨졌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대정읍에 들어선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는 신병을 대규모로 양성해 서울 재탈환 등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5년 동안 약 50만 장병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는 국군창설과 한국전쟁 상황을 알 수 있는 군사유적으로, 건군 60주년인 2008년 국군의 날을 맞아 제409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현재 옛 육군 제1훈련소는 해병대 제9여단이 관리하고 있으며 17m 사이에 있는 두 기둥의 제1훈련소 정문이 일주도로 양쪽에 가로세로 2m, 높이 4.5m 정도의 시멘트 기둥으로 남아 있다. 1훈련소 정문에서 동쪽으로 100m 지점에 평화의 상징탑이 4차선 북쪽에 세워져 있는데, 표지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화의 터: 이 터는 6·25 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국토 수호를 위해 장병을 양성한 국난극복의 산실로서 세계인이 지켜본 자랑스러운 평화군의 양성소이다.

19461116일 조선경비대 9연대가 창설된 이래, 1948년 육군 제2연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19491228일 해병대가 옮겨왔으며, 195085일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인 해병 3기가 입소한 유서 깊은 곳이다.

전장에 투입할 장병들을 양성하기 위한 육군 제5훈련소와 제3교육대가 창설되어 같은 해 91일 군번 030 장병들이 입대하였고, 대구 제1훈련소와 부산 제3훈련소가 19511월 이동, 통합하여 321일 육군 제1훈련소로 정식 창설한 곳이기도 하다. 배출된 장병의 총수는 약 50만 명으로 1일 입소장병은 2천명 내외였으며, 한 때는 8만 명이 입소하기도 했다. 이후 19548월 논산으로 이동함으로써 19561월 폐쇄되었다. 195121일부터 423일까지는 공군사관학교가 모슬포로 옮겨와 대정초등학교에서 사관생도를 양성하였다. 또한 19539월에는 육군 마지막 사단인 제29사단 일명 익크사단(신익희의 미국식 발음인 익크에서 따온 것으로 신익희를 기리기 위함)이 이곳 모슬포에 창설되면서 태권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하며 훗날 전군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계기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뼈를 깎는 훈련을 받은 장병들은 구국의 일념으로 전장의 곳곳에서 애국혼을 불태웠으니, 그분들의 애국충정을 기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대한민국의 역사에 큰 의미를 지닌 이곳 모슬포에 오늘 이 비를 세운다. (서기 2007321일 대정역사문화연구회)”

1훈련소에서 전투병력을 양성하고 야전훈련을 위해 5개 지역에 숙영지를 마련했다. 19522월 안덕면 동광리에 제1숙영지를, 중문면 상예동에 제2숙영지를, 중문면 하원동에 제3숙영지를, 동년 3월에 사귀포시 상효동에 제5숙영지를 개소했다. 4개의 숙영지는 생수의 용출조건이 좋은 곳에 위치했다.

1숙영지는 주로 안덕면 동광리, 광평리, 한림읍 금악리와 애월읍 봉성리의 넓은 목야지 일대였다. 한림읍과 애월면 경계지점인 이달이오름 옆에서 카빈, M1, 기관총, 무반동총, 박격포 등의 실제 사격훈련을 실시, 이곳에서 양성된 50만 군대는 훈련이 끝나면 수용대로 돌아가 대기하다가 화순항에서 LST에 승선하여 육지부의 보충대를 거쳐 전쟁터로 나갔다.

숙영지는 19545월 해체됐다가 11월 재차 창설, 이후 점차 축소하고 논산 육군 제2훈련소를 개설하자 폐쇄됐다.

19491월 육군항공사관학교라는 이름으로 설치해, 194910월 공군 창군과 함께 공군사관학교로 개명된 공사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12월 대정초등학교로 학교를 옮겨 사관생도들을 길러냈었다(3개월 후인 5월 진해기지로 이동). 이러한 연유로 대정초등학교는 공군사관학교 및 공군 제8546부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대정초 교정에 세워진 공군사관학교 훈적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육이오 동란이 이 땅을 휘몰아칠 때 공군사관학교는 195121일부터 423일까지 이곳 대정초등학교에 머물렀다. 밤낮 없는 전시교육훈련에 온갖 곤궁을 이기며 피땀을 흘렸으니 이곳을 거친 자 1073. 이들은 핵심 기간요원으로서 막강 공군의 초석이었다. 한때 보라매들의 훈적지 모슬포 공군의 청사와 전통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리라. 우리 공군은 나가서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 우리는 하늘에서 살고 하늘에 목숨 바친다. (공군가 중에서)”

1953년 육군 제1훈련소에서 창설된 제29사단은 ‘태권사단·주먹사단·익크부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은 육군 제29사단 발상탑.
1953년 육군 제1훈련소에서 창설된 제29사단은 ‘태권사단·주먹사단·익크부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은 육군 제29사단 발상탑.

태권도부대인 제29사단의 상징 주먹탑

1953년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에서 창설된 제29사단은 태권사단·주먹사단·익크부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태권사단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로는 당시 사단장이었던 최홍희(1918~2002) 장군이 태권도에 보여준 각별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 시절 당수도 또는 공수도 등으로 불리던 무술에 태권도라는 이름을 붙인 주인공은 최홍희 장군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부대원들의 경례구호도 태권으로 외치게 하고, 처음으로 장병 대상으로 태권훈련을 실시하는 등 태권도의 기반을 닦았다.

최홍희는 함경북도 명천 출신으로 14세부터 서예와 택견을 배웠다. 일본 중앙대학 전문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43년 가라데에 입문하여 2단 정도의 기량을 익혔다. 19441월 징용되어 조선학병을 중심으로 전국 반일동맹을 조직하다가 검거돼 6년형을 선고받아 평양형무소에서 복역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서울에서 국군창설요원의 영어군사학교를 수료하고 19539월 모슬포에서 제29사단인 일명 익크부대를 창설하여 사단장을 역임했다.

1954년 말경 태권도라는 명칭을 창안한 그는 당시 일부 군대를 중심으로 태권도라는 명칭이 쓰이도록 기반 조성에 나섰으며, 1958년 대한태권도협회를,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을 창립한 후 총재로 취임했다.

19723월 캐나다로 망명한 그는 박정희의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펼치며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198010월 평양체육관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20026월 그가 여러 차례 방문했던 평양에서 사망한 후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었다.

태권도의 발상지임을 웅변하는 주먹탑은 높이 5.5m, 둘레 14m, 삼각기둥 모양의 각면에건강한 체력·철저한 훈련·만만한 투지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맨 위에는 한반도 모양의 도안 속에 오른손 주먹을 그려 넣은 돌을 세웠었다. 198511월 주먹탑이 사라졌다가 200011월 대정읍 개발협회에서 대정 지역이 태권도 발상지라는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탑을 복원하기로 하고 탑 매몰 추정지인 상모리 2849-5번지 일대를 발굴하여 29사단 주먹탑을 찾아냈다. 발굴 당시 탑은 세 동강이 났고, 글씨도 심하게 훼손됐다.

강수일 당시 대정읍개발협회 회장은 복원을 위해 캐나다에 망명 중인 최홍희 총재로부터 탑에 새길 친필을 받아왔다. 그러나 부서진 조각을 붙여 글자를 복원하는 전문적 기술이 부족했고 예산도 모자랐다. 게다가 공사를 하던 인부가 추락사고를 당해 복원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발굴 후 4년이 지난 20043월 원형을 유지한 발상탑이 상모리 농남못 곁에 복원돼 세상에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20067월 발간된 제주태권도 50년사에는 모슬포 29사단이 제주 태권도와는 관련이 없다는 다음의 글이 실렸다.

“19539월 모슬포에 창설된 육군 제29사단(사단장 최홍희) 일명 익크사단에서 장병들의 기초체력 단련과 호국무술로서 태권도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29사단에서 행한 것은 군대조직 내에서 훈련과정으로 행해진 것으로, 민간인들에게는 영향력이 없어 제주 태권도와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모슬포 주민의 증언으로는 군이 주최하여 민간인을 대상으로 태권도대회를 열기도 했다고 전한다. 주먹탑은 태권도의 발상지가 모슬포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려 세운 것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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