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족의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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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대란을 잠재우지 못해 블랙코미디 같은 신조어가 넘쳐났다. ‘벼락거지’(갑자기 거지 신세가 된 무주택자)에 이어 ‘배배테크’(집주인에게 두 배의 위약금을 돌려받는 것), ‘강제중도금’(계약 파기를 막기 위해 미리 중도금을 건네는 것)까지 나왔다.

정부·여당 인사들의 망언과 실책에서 유래한 ‘호텔거지’(호텔 전세방에 사는 무주택자), ‘청포족’(높은 경쟁률로 청약을 포기한 사람), ‘주포원’(복잡한 주택담보대출 상담을 포기한 은행원)이란 말도 등장했다.

압권은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대출’이다. 미친 집값에 좌절하는 20·30세대가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의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이다. 촌철살인의 기발함과 씁쓸한 현실이 겹친 ‘웃픈’ 줄임말들이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빚이라 했다. 연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9%대까지 오를 거라는 전망에 ‘영끌족’이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집값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가운데 대출금리가 급등해 그들을 심리적 공황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걱정인 건 주담대 금리는 이미 7%를 넘어섰다. 1년 만에 두 배나 뛴 셈이다. 30년 만기로 4억원을 빌린 대출자라면 이자와 원금을 합쳐 매달 25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벌써 190만명이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만약 연 9%까지 금리가 오르면 월이자 부담은 약 300만원, 원금을 합친 원리금은 321만원으로 불어난다. 연간 이자만 3600만원에 달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한국인에게 집의 의미는 각별하다. 서민에겐 곤한 육신을 눕히는 최소한의 공간이요, 돈 있는 이들에겐 자산 축적의 수단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떤가. ‘이생집망’ ‘영끌대출’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처럼 내 집 마련은 실로 하늘의 별따기다.

없는 집에서 잔치를 벌였다면 그다음 수순은 빚잔치뿐이다.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면서 영끌한 이들이 또다시 목을 졸릴 판이다. 그들이 자초했다지만 정책 실패로 집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한 당국 책임도 없지 않다.

이제 ‘부모 찬스’라도 없으면 내 집 마련은 거의 불가능의 영역에 들어섰다. 집 한 칸의 꿈조차 실현할 수 없는 우리 사회가 어찌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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