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성의 강인한 생활력 바탕 ‘리더’로 우뚝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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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영희 前 서부경남제주도민회장

출향 해녀로 청춘 바쳐…한라잠수나잠부녀회 설립 주도
서부경남제주도민회장 3선 연임하며 제주 발전에 노력
2016년 제주문화상·2018년 김만덕상 등 숱한 수상 실적
여성 첫 제주도민회장으로 선출된 강영희 전 회장(맨 오른쪽)은 제주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도민회와 고향 제주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여성 첫 제주도민회장으로 선출된 강영희 전 회장(맨 오른쪽)은 제주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도민회와 고향 제주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제주 여성의 강인한 생활력으로 낯선 타향에서 ‘제주년’이라는 비아냥과 따돌림을 극복하고 마침내 여성 리더로서 우뚝 선 강영희 전(前) 서부경남제주도민회장(75).

56년째를 맞는 그의 타향살이는 출향 제주 해녀들의 삶 그 자체였다.

스무살도 채 안 된 나이에 부산, 통영, 한산도, 포항의 바다에서 숨비소리를 내며 물질에 청춘을 바친 강 전 회장은 결혼을 하면서 거제에 정착했다. 

그 후 수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재외제주도민회와 제2의 고향 거제를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로서 그 위치를 확고히 해왔다.

▲출향 해녀의 길을 걷다

강 전 회장은 1947년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9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고조부는 정의현 현감을 지냈고, 할아버지는 목장을 경영한 대지주, 아버지는 목장과 어장을 경영하며 자선 사업을 펼쳤던 명문가 집안이었다. 강연호 현(現)제주도의회의원(3선)이 그의 동생이다.

표선 초·중·고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인 18세 때 부친이 세상을 뜨면서 가세(家勢)가 급속히 기울자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돈을 벌어 집안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세 때 부산으로 떠났다.

부산에 갔으나 어린 나이에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한 일이 물질이었다.

고등학교 때 수영선수를 했기 때문에 물질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과 통영, 한산도를 다니며 돈을 벌었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데다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수입도 좋았습니다.”

그는 “번 돈으로 집에 보탬이 됐고, 어린 동생들도 공부를 할 수 있어서 해녀라는 일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거제에 정착하다

강 전 회장은 7~8년 정도 해녀 일을 하다가 부산에서 수산업을 하고 있던 남편을 만나 1974년 결혼을 하면서 남편의 고향 거제로 이주했다.

제주라는 큰 섬에서 거제 섬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것이다.

거제에 정착하면서 해녀 일을 그만뒀다.

대신에 제주에서 부친이 조업을 하던 ‘머구리’ 배를 거제로 가져와서 남편과 함께 운영하기도 했고, 하루 2시간씩 자면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일을 했다.

그는 “거제에 들어오면서 몇 년 내에 집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악착같이 생활한 끝에 4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고 회상했다.

▲사회봉사 활동에 앞장서다

강 전 회장은 가정생활이 비교적 안정되자 새마을여성회를 시작으로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수많은 단체 활동을 하면서 지역주민들을 살피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 앞장선 것이다.

그는 거제시 새마을부녀회장, 주부교실 거제시연합회 회장, 거제시 의용소방대장, 거제시 교육청 산하 72개교 어머니연합회 회장, 대한민국팔각회 해송팔각회장, 민주평통자문위원 등을 두루 섭렵했다.

강 전 회장은 “어떤 일을 맡으면 책임량을 100% 이상 완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수많은 단체장을 맡게 된 것 같다”며 “남을 돕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할 때 더불어 함께 풍족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고 많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을 대표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거제시 장목면 주민자치위원장, 장목면지 편찬위원장도 역임했으며 거제를 대표하는 봄 축제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대금산 진달래축제’의 축제위원장은 현재까지 13년째 맡으면서 손수 산신제 준비를 해오고 있다.

또한 홀로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봉사 활동, 그리고 저소득 가정의 자녀 장학금 지급 등 기부 활동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못다 한 공부를 더 하기 위해 경남대 경영대학원과 북한대학원을 수료하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각종 사회 공헌 활동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으며, 새마을여인상, 장목면민상, 불우이웃돕기 교육부장관상, 국민교육 장학금지급 공로패, 청소년선도봉사 경남지사상 등 각종 표창과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 전 회장은 특히 1996년에는 경상남도 탄생 100주년 기념 ‘경남 100인 인물’에 선정됐으며 2015년에는 ‘거제를 빛낸 인물 30인’에 선발되는 영예도 안았다.

▲여성 첫 제주도민회장

강 전 회장은 제주도민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1989년 서부경남제주도민회 출범에 앞장섰던 그는 부회장 4년, 수석부회장 4년을 거쳐 2014년 회장으로 선출됐다.

제주도민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도민회장에 뽑힌 것이다. 강 전 회장은 세 번 연임으로 2020년 2월 총 6년의 임기를 마쳤다.

그는 또 2005년부터 재외제주도민총연합회 직능 부회장을 수년간 맡으면서 도민회 행사 때마다 참석, 제주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도민회와 고향 제주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노력했다.

강 전 회장의 이 같은 헌신과 봉사로 인해 2016년 제주도 문화상(국내 재외도민 부문)과 2018년 김만덕상(봉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부 모델로 활동하다

강 전 회장은 2004년부터 4년 동안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의 주부 전속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170㎝의 큰 키에 훤칠한 미인형 외모로 인해 백화점 관계자와 디자이너들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배우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워낙 보수적이고 전통이 있던 집안이었기 때문에 연예계 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는 그는 “부산 롯데백화점에 옷을 사러갔다가 우연히 주부 전속 모델 제안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강 전 회장은 “당시에는 거가대교가 건설되기 전이어서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패션쇼에 참석하려면 많이 힘들었다”며 “그래도 제주 출신이라는 긍지를 갖고 열심히 활동했다”고 회고했다.

강영희 전(前) 서부경남제주도민회장의 주도로 설립된 거제시 한라잠수부녀회 창립총회 모습.
강영희 전(前) 서부경남제주도민회장의 주도로 설립된 거제시 한라잠수부녀회 창립총회 모습.

▲제주 해녀의 전통을 잇다

강 전 회장은 2014년 거제시에 거주하는 제주 출신 해녀들을 중심으로 한 ㈔한라잠수나잠부녀회의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제주 출신 해녀들은 거제나잠협회에 가입돼 있었으나 공금 횡령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법정다툼이 발생하는 등 해녀끼리 다툼이 생기자 한라잠수나잠부녀회를 새로 조직한 것이다.

그는 “일각에서 왜 ‘한라’라는 명칭을 붙이느냐며 반발도 했으나 ‘해녀의 원조는 제주가 아니냐’며 밀어붙였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강 전 회장은 또 제주에서 해녀 관련 행사가 열릴 때면 거제와 통영, 남해, 삼천포 등지의 해녀들을 인솔해 고향을 방문하고 출향 해녀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는 2019년 세계제주인대회 때는 출향 해녀로서의 삶과 제주여성의 긍지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제주해녀들의 고령화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해녀의 뿌리는 제주인 만큼 제주도청에 해녀보전과를 만들어 제주 해녀의 역사와 전통을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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