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숨결 닿아 삶이 이야기가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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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섬 속의 섬, 우도의 역사문화 깃든 길
누운 소 모습 비슷해 이름 붙여져
다양한 역사문화유적 발견되기도
일제의 수탈과 핍박에 해녀들 항거
아름다운 비경 속 비사도 다양해
제주 정체성 삼다삼무 실현되는 곳 
천연기념물 제438호인 제주 우도 홍조단괴 해빈(濟州 牛島 紅藻團塊 海濱)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빈퇴적물이 홍조단괴로만 이루어진 해빈이다.
천연기념물 제438호인 제주 우도 홍조단괴 해빈(濟州 牛島 紅藻團塊 海濱)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빈퇴적물이 홍조단괴로만 이루어진 해빈이다.

우도의 과거와 현재

우도에서 가까이 보이는 마을이 종달리다. 제주선인들은 종달포구(두문포)에서 우도(드렁코지)로 오가곤 하면서, 누운 소를 닮은 섬을 소섬·쇠섬·우도라 불렀다 한다.

우도가 바다에서 화산폭발에 의해 형성될 당시에는 성산포와 서로 연결돼 있었고, 주변 지역은 갈대군락이 넓게 펼쳐진 조간대였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돌 그물인 원담, 거욱대인 방사탑, 옛 등대인 도대불 등이 산재한 해안가에는 해신당, 포제단, 불턱, 밭담, 특히 1845년경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연대와 환해장성이 원형으로 남아있다.

또 우도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홍조단괴 해빈도 있다. 일출봉과 우두봉 사이에 위치한 바다 심연에서, 그리고 종달포구 앞바다와 우도 해안가에 이르는 넓은 바다에서 자라는 홍조류가 영겁의 세월 속에 부서져 이룬 해빈이 바로 홍조단괴 서빈백사(西濱白沙)이다.

 

무인도였던 우도에 1697년 말 200필이 처음으로 방목됐는데, 탐라순력도 41화폭의 하나인 우도점마(牛島點馬)는 소섬에서 노니는 말을 점검하는 풍속도다. 1823년 큰 가뭄이 든 제주를 들러본 조정화 어사가 이를 조정에 건의하자 출륙금지령(1629~1823)은 해제됐으나 목장개간은 1842년에야 허가됐다. 이어 말들을 본도의 목장으로 보낸 후인 1844년부터 구좌조천 등지의 선인들이 들어와 우도를 일구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한양에서 진사벼슬을 한 제주목 출신 김석린은 서당을 지어 훈학하는 일에도, 과중한 부역과 세금을 덜어주는 일에도 앞장섰다.

지금 그가 훈학한 터에는 자그마한 역사공원이 조성돼 김석린 진사의 공덕비들을 옮겨와 세웠고 옛날 서당도 복원돼 방문객을 맞고 있다.

우도의 3대작물은 땅콩, 쪽파, 마늘이다. 3대작물 중에서도 특히 우도 땅콩이 유명하다. 땅콩아이스크림이 우도의 명물이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150여 년 동안 마소의 배설물로 버무려진 우도는 토질이 비옥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자란 땅콩이 유달리 고소한 맛을 냈기 때문이 아닐까.

183만여 평인 우도의 땅들이 1000여 평 내외로 나눠진 것은 이주민들에게 골고루 분배하기 위해서, 농로가 많은 것은 맹지를 최소화하려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오래전부터 배려의 문화가 우도에 이뤄진 흔적이다.

우도의 관문인 천진항에는 해녀항쟁기념비도 방문객을 반긴다. 19321월 제주도사 겸 제주해녀어업조합장인 일본인 다구치 데이키(田口禎熹)가 세화리를 순시하는 날 해녀들은 대대적인 항일 연합시위를 벌였다.

바다를 건너 항쟁에 나선 300여 명의 우도해녀들을 비롯한 1000여 명의 해녀들이 도망가는 도사를 포위했다. 이에 경관이 해녀의 목에 칼을 겨누자, 총칼 끝에 목을 찔린 해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 대하면, 우리는 죽음으로 대하겠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욕심을 자르고, 욕망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제주해녀들의 삶은 드디어 2016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우도에 조성된 해녀항쟁탑 건립 뒤에는 그리고 우도팔경을 지어 우도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뒤에는 당시 연평중학교 교장인 김찬흡 선생이 있었다. 그래서 2020년 그분의 공덕비가 해녀항쟁탑 곁에 건립되기도 했다.

희망과 두려움의 상징인 바다를 건너는 것은 문화를 실어 나르는 것과 같다. 우도에 가면 일출봉, 수산봉, 지미봉을 비롯해 한라산의 절경과 바다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국 CNN 등 여러 매체에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에 선정될 만큼 우도는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우도엔 또한 숨겨져 있는 비사가 상당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에 오듯, 섬 속의 섬 우도로 온다.

우도의 밤과 등대공원 주변 절경

우도면(면장 강선호)과 우도면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고흥범)와 협약을 맺으러 우도행 낮 배를 탄 질토래비 답사팀은 바다 풍경이 좋아 옛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

우도의 밤은 더욱 환상적이다. 청정한 바람이 지나가는 섬에서 보는 별빛이 곱다. 말의 수호신 방성(房星), 장수의 별 수성(壽星), 현인의 별 덕성(德星)도 보일 듯하다.

큰 강 같은 바다 너머 섬 끝머리에 성산일출봉이, 그 맞은편에 종달리 지미봉이, 그 뒤로 한라영봉이 어스름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하늘의 나루터 닮은 천진항도 소들이 풀을 뜯었다는 하우목동항도, 우도를 오가는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을 실어 나르다 지쳐 잠시 쉬는 시간이다.

저 멀리 밤배들이 집어등을 밝혀 바닷고기를 모으고 있다. 여름이면 더 많은 배들로 우도바다는 불야성을 이룬다. 이런 풍경이 야항어범(夜航漁帆)이다. 우도의 밤바다는 수많은 사연을 속삭이며 새로운 생각을 불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혼자 걷는 산책이 외롭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우도에서는 쇠머리오름 정상에서 비치는 우도등대가 밤길 벗이자 나침판이다. 1906년에 전국에서 6번째로 세워진 우도등대는 20초마다 회전하며 주위를 밝힌다. 사방으로 보내는 불빛이 50밖까지 비치고, 비바람이 불거나 안개가 낀 날에 울리는 에어사이렌 소리는 9멀리에서도 들린다고 한다.

바다의 신호등인 등대는 배가 들어올 때 우측에 빨간 등대가 빨간빛으로, 왼쪽에는 하얀 등대가 녹색으로 불빛을 비춘다. 이는 전 세계가 공통이다. 제주지역에는 오래된 유인등대가 네 곳(산지·추자도·마라도·우도)에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우도등대 주변에 등대공원이 조성돼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제주도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우도등대는 2003년에 높이 16m의 원형 콘크리트 등대를 신축했고, 국내 기술로 개발한 대형 회전식 등명기를 설치해 어두운 바다의 길을 비추고 있다.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우도봉 주변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등대를 테마로 한 등대공원을 조성해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제공하고 있다. 등대공원에는 홍보 전시실 및 항로 표지 체험관과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파로스 등대 등 국내외 유명한 등대모형 수십 점을 전시해 우도봉을 오가는 탐방객들에게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소섬을 우도라 부르듯 우도등대가 있는 쇠머리오름을 우두봉이라 부른다. 우도를 상징하는 오름이기에 우도봉으로 더 알려져 있다. 우도봉에서 바라보는 한라영봉과 오름군락, 그리고 주변에 펼쳐진 곱디고운 잔디밭과 해안절벽이 빚어내는 다양한 풍경들. 1980년대부터 알려진 우도8경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주간명월(晝間明月), 지두청사(地頭淸沙), 후해석벽(後海石壁), 동안경굴(東岸鯨窟).

삼다삼무의 섬 우도

최근 우도에서는 신석기 패총, 동굴유적, 고인돌, 탐라시대 유물 등, 다양한 역사문화유적이 출토된 바 있다. 천진항 근처 패총에서는 신석기 후기에서 말기로 추정되는 토기가 출토됐는데, 연대 측정결과 3600년 전과 3200년 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자료들을 통해 우도에는 약 3500년 전부터 해산물 등 수렵채집 집단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도 도처에서는 무덤도 만날 수 있다. 산 자와 가신 이들이 이웃해서 지낸다. 고향을 등진 북망산천에 고인의 유택을 모시는 본도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또 우도선인들이 식수와 생활용수로 파놓은 물통들도 만난다. 옛 물통에는 물이 사시사철 고여 있으나 썩지 않는다. 게다가 수초도 벗하고 있다. 반면 최근에 파낸 저류지에는 물이 고이지 않는다. 그래서 옛 물통은 절박한 생활에서 우러난 우도선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삼다삼무(三多三無)는 제주의 또 다른 이름이지만 잊혀져가는 이름이기도 하다. 삼다삼무를 알리려는 것은 제주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우도에는 대문 없는 집이 대부분이다. 우도야말로 삼다삼무가 실현되는 곳이다. 반농반어인 우도에서 농산물과 해산물을 집안으로 들이는데 대문은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이 될 뿐이다. 대문 없이 살고 있으니 도둑이 있을 리 없고, 서로 나누는 정신이 있으니 걸인이 있을 리 만무하다.

바람 많은 우도에는 또한 돌도 많다. 환해장성, 할망당, 방사탑, 원담, 망대 등. 그리고 강한 생활력의 상징이기도 한 해녀도 많다. 하지만 양성시대이다 보니 여다는 삼다에서 해방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남자가 오히려 여자보다 많은 편이다. 삼다 중 돌과 바람이 자연 재화이듯, 여자 대신에 자연 재화인 오름으로 대체해 돌·바람·오름으로 제주 삼다를 삼으면 어떨까. 마치 우도인 우도봉이 있어 더욱 빛나는 우도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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