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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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겨우내 얼었던 흙이 풀리는 무렵이 해토머리다. ‘해토(解土)’와 ‘머리’의 합성어다. 봄의 첫머리라는 뜻이다. 흙이 녹으면 질펀하다. 땅이 질다고 ‘따지기’라고도 한다. 해빙기 같은 한자어에 갈음해 쓰면 좋은 순우리말이다.

가슴 두근거린다. 애타게 기다리던 봄이 산 내려 잰걸음으로 오고 있다.

예전엔 발이 한바탕 노고를 치르기도 했다. 따지기에 교실로 들어가려면 질퍽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운동장이 엉망진창이었다. 흙이 신발에 묻어 범벅이 됐다. 고무신이 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요즘은 학교마다 잔디운동장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상전벽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 해토머리엔 돋아나는 새잎으로 천지에 푸른 기운이 왁자하다.

환절기다. 계절이 바뀌니 어정쩡해 헷갈리기 일쑤다.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우내 공들여 오동통 살 오른 개나리 꽃눈이 뜻밖의 꽃샘에 고난을 겪기도 한다. 풀었던 앞섶을 허겁지겁 다시 여미기도 한다. 겨울의 영지를 벗어나려는 마지막 시련이다. 봄을 시새워 한파가 꽃샘을 몰고 온다. 방심했던 푸나무들의 아우성이 숲을 뒤흔든다. 그러나 자연은 언제나 너른 품이다. 노여움 풀고 살아있는 것들을 따뜻이 품는다.

얼마 전, 교래리 절물자연휴양림에 눈을 뚫고 나온 복수초를 「제주일보」에서 사진으로 보았다. 연약한 꽃이 찬 흙에서 솟아나 고개를 쳐들다니. 이적이었다. 황금잔화(黃金盞花), 그렇구나, 영락없는 황금색 잔이었다. 또 있다. 연꽃이 하얀 눈 속에 피어 설련화(雪蓮花)라 하고, 하얗게 쌓인 눈을 헤치고 나와 꽃이 피면 둘레가 둥그렇게 구멍이 난다고 눈색이꽃, 얼음새꽃이라고도 불린다.

그곳 ‘생이 우는 숲’ 그 길섶엔 몇 년 새 복수초가 지천으로 번성했다. 이제 철을 만나 흐드러지게 피어 맵시를 뽐내고 있으리.

안방에 걸려 있는 청전(靑田) 이상범의 그림 앞으로 다가섰다. 논과 개울을 가까이에 두고 야산을 원경에 배치해 횡으로 전개되는 독창적 구도, 엷은 먹에서 차츰 진하게 변화하는 농담의 묘를 살린 향토색 짙은 화풍 그리고 시골 산야의 정취를 계절의 추이를 따라 우리의 서정으로 승화시킨 한국화 한 점.

「움칫 놀랐다. 겨울잠에 곤히 떨어졌던 청전 그림이 따스한 햇살에 뻥 터졌다. 너나없이 사상 팔방이 깨어나 야단법석이다. 엊그제까지 건천이더니, 어느새 불어난 개울물 재잘재잘 흐르는 소리. 길섶엔 살랑이는 미풍에 늘어선 포플러 하늘하늘 춤사위 살갑다. 봄은 하루해가 노루 꼬리만큼 짧다. 보습도 닦았고 땅이야 질펀해졌다지만, 사래 긴 밭을 언제 갈아엎을꼬. 이랴~, 쟁기 짊어진 늙은 농부, 소를 앞세워 길을 재촉한다.

마음이 바빠졌나. 길모퉁이를 돌더니 갑자기 자진모리 걸음이 휘모리장단을 타기 시작한다. 햇살 한 줄기 내리니 새벽안개 걷히고, 달빛에 돌아오던 농롯길이 가까스로 눈에 든다.

짚신 신은 발바닥이 융단보다 더 푹신하다. 음마~, 느릿느릿 걷던 소도 한 번 길게 뽑는다. 해토머리다.-졸시 〈해토머리〉 전문」

아파트 숲길을 거닐다 발가벗은 벚나무 아래 앉다 깜짝 놀랐다. 웬 펌프질 소리인가. 삭정이처럼 말랐던 검은 가지로 물을 퍼 올리는 소리다. 다시 눈을 번쩍 뜬다. 저 무수한 잎눈들, 내일이라도 얼굴을 내밀 낌새다. 봄이 오는 소리가 파도로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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