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차다.
이월, 차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강정심 / 수필가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이 보인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어 맘 놓고 옷자락을 열지 못한다. 작은 바람에도 움츠러들고 어깨가 시리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계절을 보고 있다. 뜰 앞에 서있는 동백나무, 올해는 유난히 일찍 꽃을 피웠다. 만발하던 꽃들이 휘몰아친 한파에 얼어버렸다. 반들반들한 잎사귀에 뒤질세라 붉게 피던 꽃잎은 누렇게 시들고, 노란 꽃술은 힘없이 오그라들었다. 십일월 끝 무렵, 밀려올 추위를 아는 듯 서둘러 활짝 피어나 세상을 장식하더니 기습당한 병정들처럼 풀이 죽은 모습이다.

겨울이 시작되며 온몸의 통증이 심해졌다. 여기저기 시큰거리고 덜거덕, 덜거덕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서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가끔 통증은 있어도 그저 이순이 넘어 아플 때가 되었나 보다, 나이가 들면 나타나는 노쇠 현상이겠거니 여기며 지내던 참이었다. 날이 추워지자 증상은 더 악화되어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무릎에 힘이 빠져 계단 하나 오르기가 땀이 나고, 내리막길은 주저앉을 것 같아 비스듬히 한발 한발 내디뎌야 한다. 몸이 아프면 제일 슬픈 건 기동력이 떨어지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일을 마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고 피곤해져 일을 하면서도 자괴감이 든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도록 몸을 돌보지 않았을까, 이렇게까지 몸이 많이 상했었나? 이러다 걷지 못하면 또 어쩌지?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어머니가 한동안 몹시 아프셨다. 칠십 세를 넘어서자 그동안 쌓여온 노동의 이력만큼이나 몸의 통증은 비례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은 심했다. 이곳저곳 병원을 다니며 진찰을 받고 치료를 했지만 고질이 된 병은 쉽게 낫지를 않았다. 언젠가는 버스터미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병원까지도 걸어갈 수 없어 몇 번을 쉬면서 가야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프면서도 어머니는 자식들을 번거롭게 할까봐 연락도 없이 혼자 병원을 가신 적이 더 많다. 자식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손수 해나가며 버텼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는 몰랐다.

한참이 지난 후에, 너무 아팠을 때는 걷지도 못하고 일어설 수도 없어서 기어 다니다시피 하며 밥을 차려 먹었다고 말씀 하셨다. 어떻게…. 자식은 죄인일 수밖에 없다.

“느가 많이 아팡 큰일이여.”

읍, 꿀꺽. 고이는 눈물을 삼켰다. 다 큰 딸을 아직도 걱정하시다니. 어머니의 아픔은 잊고 딸이 아픈 걸 먼저 챙기고 있다. 어머니에게 맏이인 나는 늘 생손이 아리는 것 같은 그런 자식인가보다. ‘너는 아직은 젊으니까 병원 잘 알아봐서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고 신신 당부를 하는 어머니. 당신은 다리가 퉁퉁 부어 주사와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견디면서도 나는 괜찮다고만 하시니. 어머니의 마음은 어느 만한가. 헤아릴 수나 있을까.

병원을 알아보고 다녀왔다. 여러 가지 검사도 하고 진료도 받아보았지만 마음만 복잡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찬찬히 다시 정리를 해 봐야겠다. 아프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몸이 아프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없어 누군가의 짐이 된다면? 어머니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도 못한 채 말라버린 꽃들 사이로 늦게 핀 꽃들이 인사를 한다. 모진 눈보라 속에 움츠려 있던 꽃봉오리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내밀며 나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추운 겨울을 잘도 견디고 핀 꽃들, 자연의 힘이란 가늠할 수가 없다.

나약해져가는 나의 마음을 추슬러 본다.

채 피어나지 않은 작은 꽃봉오리들이 응원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빨리 몸을 회복하여 어머니의 상심을 덜어 드리고 활기찬 봄날을 걸어보라고.

이월,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붉은 동백꽃잎에 볼을 대 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