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바라보는 역사적인 자세
시대를 바라보는 역사적인 자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가끔 이런 이름들을 접하게 된다. 베르됭, 드레스덴,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베르됭이나 드레스덴은 좀 낯설지 모르겠는데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는 낯설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투가 프랑스의 베르됭 전투이다. 한 지역에서 10개월 정도 전투가 지속되는 동안 30만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100만명 정도의 사상자가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차대전의 재래식 전투에서 그만큼의 사상자가 생겼다면 얼마나 참혹한 전투였을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드레스덴은 2차대전 당시 도시 전체가 불의 폭풍처럼 타올랐던 독일 어느 도시의 이름이다. 2차대전 막바지에 영국과 미국 공군이 800여 대의 폭격기를 동원하여 화재의 폭풍이 도시를 휩쓸게 만들려는 의도로 폭격한 것인데, 의도대로 드레스덴은 불의 폭풍에 휩쓸렸고 짧은 시간 동안에 4~5만명 정도가 희생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우슈비츠는 유대인 대학살이 자행된 폴란드 어느 수용소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베르됭이나 드레스덴이나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는 1·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참혹했던 대재앙과 관련된 이름들인 셈이다.

20세기의 인류는 전쟁과 비극의 참혹한 상처를 안고서 현대 세계로 진입해오고 있었다. 큰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생명이 희생될 때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이 활용되고 있었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독일의 과학자가 치명적인 독가스를 만들어서 1차대전의 전쟁터를 지옥으로 만들고 말았다. 히로시마의 원자탄은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세상을 앞서가던 서구의 강대국들이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동원하면서, 세계대전을 일으켜 서로 열심히 싸웠다. 그들은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을 파괴하는 데에 온 힘을 다하여 싸웠던 셈이다.

그리하여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전쟁의 폐허 위에 주저앉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향하여 고통스럽게 외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찌 이런 참혹한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처음에는 회개하며 애통하는 분위기였는데점차 원망과 탄식으로 변해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이런 함성이 들려오게 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일어난 이 비극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야 할 게 아닙니까?” 그들의 함성은 원망과 탄식으로부터 반항적인 함성으로, 더 나아가서 그들의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으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당시 유럽에 반항적인 무신론자들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신앙과 윤리에 충실했던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비판적인 무신론의 지식인들이 서구 세계를 앞장서 이끌어오는 동안 전통적인 윤리도덕을 조롱하는 흐름이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날 때도 있었다.

바둑을 마친 후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검토하는 것을 복기(復棋)라고 부른다. 흘러가버린 시간과 역사를 복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오래되지 않은 비극적인 세계사를 복기하듯 되새기면서 우리 시대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역사적인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