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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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내가 귤을 처음 본 것은 어릴 때, 친족집 제삿날이었다. 부자로 사는 종갓집 제삿날. 제사상에 진설한 노랗고 큼직한, 그때 말로 나쓰미깡이 참 먹음직스러워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갔다. 언제면 파해 저걸 맛보나 했다. 하지만 미깡은 어르신들 떡 쟁반에만 올랐을 뿐, 아이들에겐 한 조각도 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알고 보니 이젠 재배도 않는 아주 신 놈이었다. 그렇게 감귤이 귀했다.

얼마 후, 서귀포에서 귤 재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뒤뜰에 심은 한 그루면 자식 대학을 보낸다고 ‘대학나무’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그렇게 널리 알려진 감귤은 이후, 제주를 상징하는 과일로 부동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름만 행세한 게 아니다. 감귤 재배는 생존산업으로 제주인들의 삶의 토대가 됐다. 생산지가 제주 전역으로 확장됐음은 물론 해마다 감귤 수확기 겨울이 되면, 이 집 저 집에서 ‘억’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억대의 수익을 봤다는 즐거운 비명이었다. 7,80년대 억이면 큰돈이었다. 신바람이 났다. 농사꾼들이 자가용을 굴리고, 제주시에 집을 짓고 땅을 사며 부를 누렸다.

육지에서 생산하는 다른 과일과의 경쟁력 등으로 다소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온주, 한라봉에 이어 근래엔 천혜향, 레드향 같은 품종 개량에 성공하면서 억척스레 자리를 굳게 다지며 오늘에 이른다. 호황이 아니어도 제주에 감귤만한 농사가 없다.

제주는 자고이래 미풍양속의 섬이다. 아름다운 자연에 동화돼 천성이 착한 제주 사람들이다. ‘제주에서 살아봤으면’ 해 귀촌하는 사람이 저마다 내일을 꿈꾸며 속속 제주로 온다. 이들을 받아들일 만큼 제주의 품은 넉넉하고 따듯하다. 모두 ‘이웃사촌’이고, 어른이면 다 ‘삼촌’인 제주 특유의 좋은 인심 말이다.

나는 제주 사람들의 인심이 날로 좋아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믿음에 늘 뿌듯하다. 원래 샘솟는 인심에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생각이다. ‘감귤 인심’. 감귤을 따 들이는 겨울이면 제주엔 온 섬이 귤 향기로 남실거린다. 과수원에서 퍼지기 시작한 향기가 길 따라 골목으로, 집집으로 번지며 흘러든다.

“이거 맛 봅써.” 큰 그릇에 그득 담아 이웃집 울타리를 넘는 목소리가 정겹다. 이른바 ‘파치’면 어떠랴. 그것들도 여든여덟 번 부지런한 농부의 발품을 판 것임엔 똑같다. 열매가 작으면 어떻고 크면 어떤가. 비상품이라 돈이 안될 뿐, 먹는 데야 그게 그것 아닌가. 생각해 보라. 대한민국 어느 곳에 간들 이런 인심을 만날까 보냐.

나는 팔순에 이르도록 감귤나무 한 그루 키워 보지 못한 사람이다. 작은 정원과 잔디마당은 가져 봤지만 마당 구석에 유자나무 한 그루가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감귤을 담은 함지를 곁에 끼고 살았다. 인연 따라 조금씩 들어온 것들이다. 더욱이 얼마 전까지 읍내에 서른 해를 살며 이웃이 가져다주는 걸 마치 내 것처럼 먹었다. 글 몇 줄 쓴다고 버릇 난 주전부리, 감귤에 감지덕지한다. 아니, 이웃집에 옷깃 여미며 고개 숙인다.

시내로 이사 와 3년째, 이젠 시골과 다르니 감귤을 공으로 얻어먹긴(?) 글렀구나, 마트 걸음을 해야겠구나 했다. 한데 이 웬일인가. 여기저기서 연줄 따라 감귤을 건네주는 손이 줄곧 이어진다. 한 손 두 손 건네오는 인심이 새삼 놀랍다. 이런저런 정 잊지 않고 내미는 손들, 고맙기 그지없다. 제주 인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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