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뭐든 할 수 있는 오늘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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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대학에서 봉사할 기회를 가졌을 때 일이다. 교육행정 현장의 직원을 이해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고충을 들어보니 교원과 학생의 행정 실무에 대한 이해 부족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침묵하는 직원의 수동적인 태도도 문제였다. 그래서 “저희와 교수님은 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출발점부터 달라요”라는 볼멘소리에 ‘누구든,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에 말이 되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누구든,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선언은 축복이다. 그 축복은 반대로 우리를 다그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에 나오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예전보다 권리 의식이 높아진 직원이나 학생에게 그만큼의 무게를 견디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가령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권리가 충돌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업권과 교권, 그리고 직무권한은 대립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대학은 ‘선생과 학생(Universitas Magistorum et Scholarium)의 동업자조합’이라는 어원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국립대학에서는 서기보, 서기, 주사보, 주사, 사무관, 서기관 등 다양한 직급의 공무원이 행정과 사서, 공업, 농업, 해양수산, 사회복지, 환경, 시설, 기계운영, 전기운영, 운전 등 대학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직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업무에는 9급에서 7급까지 대학회계직, 대학회계무기계약직, 산단계약직, 부서자체계약직, 연구원 등이 함께하고 있다.

대학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전공 분야에 몰입하고 있으면서도 교양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과 비교과 활동에도 열심이다. 지금은 학생이지만, 언젠가 직원, 교원이 될 수도 있는 대학의 미래다. 그리고 사회 어느 분야에서도 제 몫을 너끈히 해낼 우리의 미래다. 교원도 그렇다. 조교, 비전임, 전임할 것 없이 미래의 재목을 길러내는 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동문과 도민도 각자의 자리에서 대학이 유지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누구랄 것도 없이 대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맹자를 만난 양혜왕은 흉년이 든 지방 사람과 곡식을 옮긴 일을 두고 백성에게 집중하는 정치를 했노라고 자랑했다. 그런데 맹자는 다른 제후와 ‘오십보 백보’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실무자의 책임인 현장 정책을 시행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다운 정치(仁政)의 방향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제후의 책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예로 들었지만 ‘누구든, 뭐든 할 수 있는 오늘’은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 어디서든 실현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탓을 돌려 내 일을 덜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감하고 함께 울어준 대가를 받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제 몫을 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의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그 성패의 책임은 대개 결재선 위쪽으로 갈수록 커지는 법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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