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생각
뿌리 생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나무나 풀에게 뿌리는 생명의 근원이다. 튼튼하고 굵은 줄기, 무성하게 돋아난 잎, 짙고 푸른 빛깔도 외양일 뿐 생명을 버텨내는 힘의 원천은 아니다. 옮겨 심어 보면 안다. 뿌리를 많이 다치면 끝장이다. 약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지 나무에겐 백약이 무효다.

산을 오르면서 땅을 덮은 나무들의 뿌리에 놀란다. 땅속을 뻗다가 위로 솟아올라 얽히고설키면서 등산길을 험로로 만들어 놓았다. 문득, 송강의 「관동별곡」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송근을 베어 누워 풋잠을 얼른 드니, 꿈에 한 사람이 나에게 이른 말이,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땅 위에 올라온 굵직한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누워 산행의 흥취에 겨워하고 있다. 노송의 우람한 뿌리가 눈에 밟힐 듯하다. 저 뿌리가 나무를 험한 산속에서 혹심한 비바람과 설한의 고비고비를 버텨 왔지 않은가.

소나무는 원뿌리를 수직으로 심층 깊이 내리고 수평으로 뻗으며 영역을 넓힌다. 이 수직의 뿌리 내림과 수평의 뿌리 뻗음이 소나무를 수백 년 루르게 하는 밑힘이다.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땅이 벌어지고 흙이 부서져 날리는 가물에도 소나무는 목마르지 않는다. 땅속을 장악하고 난 여력이 불끈 솟아 길 위에 꿈틀거리고 있지 않는가.

정원의 늙은 주목이 어느 날 변고를 당했다. 전문가의 진단이 나왔다. 굼벵이가 뿌리를 갉아 먹으면서 서서히 죽음이 진행돼 오다 결정적인 시점을 끝내 넘기지 못한 거란다. 조그만 눈먼 벌레가 거목을 쓰러뜨리다니 놀라운 일이다. 영악하고 끔찍한 녀석이다.

작은 텃밭에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전쟁을 치른 적이 있다. 사방팔방으로 뿌리를 길게 뻗는 것만이 아니었다. 새로 뻗는 뿌리 여기저기 솟아 나오는 새싹. 작은 텃밭이 녀석의 영지(領地)가 되고 말았지 않은가. 삽을 들고 파내느라 진땀을 쏟았다. 대추나무 뿌리의 번식력은 상상 초월로 무서웠다.

콩나물시루에 빼곡이 들어찬 콩나물들을 보면서 감탄하게 되는 게 연노랑 머리 아래로 허연 줄기를 길게 내린 끝. 거기 실 같은 뿌리 몇 개가 벋어 내리고 있다. 가느다란 숨결이 들리는 듯하다. 컴컴한 곳에서 저것들이 있어 나물을 키웠다. 참 질긴 생명이다.

사람에게서 뿌리를 찾는 건 또 미묘한 일이다. 퍽 하면 집안의 근본 운운하잖는가. 그는 옛날 어느 집안의 몇 대 손이다, 그러니 조상의 피를 물려받아 재주가 출중한 것 아니냐. 한데 이쪽은 남을 못 살게 하는 조상을 닮아 몽니께나 부릴 것이다. 이렇게 나간다. 뿌리 곧 사람이 태어난 근본을 따진다. DNA는 속일 수 없겠지만, 후천적으로 학습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개연성을 숫제 무시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뿌리가 생명을 지탱해 온 근본인 건 분명하나, 새로 태어난 후손을 평가하는 척도인 양 들이대선 안될 것이다. 문주란은 뿌리가 짧다. 옮겨 심을 때 몹시 상해 뿌리가 한둘만 남아도 죽지 않는다. 한 개체에게는 살아내는 자생력이 있다. 너무 근본에 매몰돼선 안될 것이다.

한란을 키운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분갈이하다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묵은 뿌리에서 나와 한 개체로 나뉘는 새 촉의 우윳빛 생명. 거기서 새로운 뿌리가 돋는다. 거울 속 새로 돋아난 새 이를 보며 키득거리는 아이의 웃음은 얼마나 풋풋한가. 새 뿌리도 소중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