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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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생 수필가

이름도 언어도 꿈도 빼앗긴 어둠의 시대, 일본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없애려 할 때 그는 끝까지 우리말로 시를 썼다. 고문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낀 문학인들이 친일 작품을 쓸 때도 그는 자기를 성찰하며 되레 괴로워했다. 시도 자기 생각을 펼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며 진정 시를 사랑했던, 영화의 한 장면은 지금도 짜릿한 전율로 남아 있다.

여행 계획을 세우다 우연히 윤동주를 만난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여행 관련 정보를 얻는 게 좋다고 내친김에 윤동주에 관한 책을 대출한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강제징집을 피해 일본 유학길에 오르면서 비극은 예견되었다. 암울했던 시대의 삶에 대한 고뇌와 부끄러움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청년 윤동주. 비록 스물아홉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자기 뜻을 굽히지 않으며 강인한 의지를 표현하는 저항 시인으로, 때로는 부드러운 서정을 지닌 서정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별이 창창한 밤이면 생각나는 시인이다. 여차했으면 영원히 묻혀버릴 수 있었는데 그의 시를 살려내고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정병욱과 강처중이다. 시를 품어 오늘의 윤동주를 있게 한 이들이다. 이렇듯 별 헤는 밤이면 우리 곁에는 늘 윤동주가 있었다.

정병욱은 연희전문학교 후배이며 마음을 주고받는 글 벗이었다. 윤동주가 졸업쯤 자필 원고를 정병욱에게 넘겼고, 정병욱은 징집으로 끌려가기 전에 어머니에게 원고를 부탁한다. 만약 자신이 돌아오지 못하면 원고를 연희전문학교로 보내 줄 것을 당부도 한다. 그렇게 어머니는 마루 밑 쌀독에 원고를 숨겨 지켜냈고, 강제징용에서 살아 돌아온 정병욱은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라는 제목으로 유고 시집을 출판해 윤동주를 세상에 알렸다.

강처중 또한 연희전문학교 동기이다. 경향신문 기자였던 그는 일본 유학 중에 윤동주가 보낸 시 다섯 편 중에 ‘쉽게 쓰여진 시’를 정지용의 소개 글과 함께 신문에 실었다. 그때 정지용이 쓴 윤동주 소개 글 중에 ‘평생 시 한번 발표해 보지도 못하고 무시무시한 외로움 속에 죽었구나.’라 한 발문(跋文)이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윤동주의 시집은 이렇게 그를 아끼던 사람들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참을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을 윤동주는 칼날 같은 펜으로 일본에 저항했다. 비록 총을 들고 일본에 맞서지는 못했지만, 절망적인 순간에도 우리글로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한다. 몸을 내던진 것 이상의 강한 펜으로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윤동주의 삶과 문학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몇 개월만 더 버텼으면 그럼, 독립이었는데….’ 먹먹한 마음에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래도 조금만 더 견뎌줬다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부끄러움이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윤동주, 그가 진정으로 부끄러워야 할 대상은 그 시대 친일 문학인들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아서 더 많은 시를 남기지 못했음이 아닐는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영화의 한 장면,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진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아침이다. 삼일절이 있는 달, 윤동주를 그리며.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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