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를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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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서 ‘제주 4·3 여성유족 100인이 골암수다(말하다)’ 공동 포럼
‘4·3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주제로 이야기 나눠
가슴 아픈 증언 쏟아져 나와
강경숙 전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 "4ㆍ3희생자-유족 안전하게 말하고 이를 통해 치유에 이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사진= 8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제주 4·3 여성유족 100인이 골암수다(말하다)’ 공동 포럼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사진= 8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제주 4·3 여성유족 100인이 골암수다(말하다)’ 공동 포럼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는 ‘제주 4·3 여성유족 100인이 골암수다(말하다)’ 공동 포럼이 열렸다. 포럼은 제주여성가족연구원과 제주4·3희생자유족부녀회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제주 4·3 여성유족 등 참가자들은 팀별로 ‘4·3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강일령씨(82·여)는 4ㆍ3 당시 죽창에 맞아 생겼다는 흉터를 보여주며 가슴 깊이 담아 놨던 이야기를 꺼내놨다. 

강씨는 “죽창에 찔렸던 당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위가 온통 피로 물들었다”며 “약이 없어 아버지가 상처를 흙과 쑥으로 닦아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 슬픈 것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시던 아버지가 총에 맞아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며 “어머니도 죽창에 맞아 후유증을 앓으시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인효씨(77·여)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안 계셨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어렵게 4남매를 키우셨다”며 “어머니는 눈물로 하루를 보내셨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고 말했다.

강 씨는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평화로운 제주섬에 전쟁과 갈등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4·3 당시 가족을 모두 잃거나 연좌제로 고통받는 등 가슴 아픈 증언이 쏟아졌다. 

포럼에서는 4ㆍ3희생자와 유족들이 안전하게 말하고 이를 통해 치유에 이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4·3 이후 제주 여성의 삶과 향후 과제’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강경숙 전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은 “4·3 역사에서 군사적 사건들은 공식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인정받았지만 여성들의 자녀 양육, 마을 재건을 위한 노동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4ㆍ3 당시 남아들은 양자 또는 어떤 방식으로 가족 관계에 등록됐지만 가족관계등록부(호적) 불일치 사례의 76.9%(78명 중 60명)가 여성일 정도로 고령이 됐음에도 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4ㆍ3은 제주여성들의 교육 단절이 되는 원인이 됐다. 4ㆍ3 전후에 태어난 여성들은 호적이 없어 학업이나 취업 제약을 받았다”며 “어려운 가정 형편, 가족 부양을 위해 교육의 기회를 포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 전 연구위원은 “4ㆍ3 희생에 대한 보상 이후 과제를 모색해야 한다”며 “4ㆍ3에 대한 보상은 역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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