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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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낙엽은 초록을 그리워하는가. 가을의 뜰에 서면 봄과 여름이 그립다. 어느새 그 시절로 침몰해 간다. 시작하던 날의 희망의 노래가 생각나 가슴이 울렁거리고, 그때 펼치던 꿈 하나에도 가슴 부풀며 사유가 과거로 흐른다. 사유의 역주행이다. 먼 데로 흐르는 구름을 타고 흐르며 과거를 오늘에 불러낸다.

낙엽이 분분한 날, 아내와 함께 아파트 뜰을 거닐디 벚나무숲 아래 앉았다. 쏴아. 계절의 숨소리가 소스리바람을 부르는가. 숲 전체가 너울치더니 이내 중심을 잡았는지 갑자기 멈춘다. 자그만 동요도 없다. 바람에 흔들리다 균형을 되찾는 절묘한 수습이 놀랍다.

벚나무 광장이라 명명한 이 자리는 이곳 교통의 요충이다. 입구로 진입한 차량이 두 줄로 늘어선 동과 동 사이로 빠져들었다 나온다. 자연 사람들의 통행도 제일 잦다. 종일 앉아도 오가는 차량과 사람 구경으로 무료하지 않다. 남녀노소가 외출하느라 연출하는 대사 없는 연기가 볼 만하다.

오늘은 들고 나는 아이들에 눈이 간다. ‘우리도 저런 아이들을 키우며 오늘로 늙어 왔는데.’ 이렇게 돼간다. 우리 앞을 지나는 아이들에게서 이제 오십 줄의 두 아들의 어릴 적을 포개 놓으면 감회가 새롭다.

젊은 엄마들이 유모차에 아기를 태워 밀고 간다. 우리 부부는 경험하지 못한 태울 것이다. 잘 미끄러지는 데다 바람막이까지 돼 있다. 아기의 얼굴이 평화롭다. 시대의 풍요를 보는 것 같다.

유치원 차를 기다리는 엄마가 앞으로 아기를 안아 업고 마중 나왔다. 적어도 아이 둘을 낳았으니 각별하게 다가온다. 한 50대로 보이는 여인도 시간에 맞춰 온다. 늘 만나니 임의로워 아내가 묻는다. “아이와 어떤 관계예요?” “외손자입니다.” 뜻하잖은 답까지 한다. “저는 차이나예요.” 아내의 질문엔 무슨 감이 있었나. 그분, 한국인의 장모 아닌가. 하루도 그냥 건너지 않고 외손 마중 시중을 한다. 딸을 한국에 시집 보낸 중국인 젊은 할머니.

우리 아이들 때도 유치원이 있었다. 제복에 작은 가방 메고 달랑달랑 달려가던 조그만 마당의 집. ‘00유치원, 00유치원, 착하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꽃동산’ 하고 노래 불렀었는데….

눈이 여중·고생에게로 간다. 다들 긴 머리들이다. 시절의 추세인지 단발머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치마 길이에 눈을 보내며 염려한다. 조금만 길었으면 좋겠는데, 뭐라 말하는 어른이 없는 세상이 돼 버렸으니. 학교도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옆은 지날 때마다 꼬박꼬박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아이가 있다. 하도 기특해 아내더러 과자 사 먹게 지폐 몇 장 주자 해 3천 원을 손에 쥐어준 적이 있었다. 마침 눈을 입구 쪽으로 돌리려는 참인데, 누가 가까이 오는 기척이다. “이거, 드세요.” 불쑥 온주밀감 두 알을 내미는 작은 손. 뜻밖에 그 아이였다. 노란 감귤 두 알을 한 손에 하나씩 잡고 서서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잖은가. 뜻밖이다. “아이고, 착해라. 하지만 우리 집에도 귤이 있거든. 네가 먹으렴, 그렇게 해요.” 가볍게 그 애의 손을 밀며 쥐어주었다.

오래 세워 놓는 것 같아 한라초등 3학년, 아버지가 학원에 나간다는 데까지만 듣고 등을 다독여 주었다. 아이가 내밀던 감귤 두 알이 눈앞에 선하다. 어렵게 내밀었을 그 답례품(?) 감귤 두 알. 아이도, 우리 부부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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