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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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찬 수필가

마을회관 마당 한편에 이동병원 차량이 정차해 있고 주민들이 길게 늘어섰다. 매년 봄가을에 걸쳐 국민 건강보험 대상자들의 검진을 받는 모습이다. 대부분 노령층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시내병원으로 가서 무료로 검진받는 기본종목 이외로 의심되는 부분을 샅샅이 검진받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끼고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더없이 자랑스럽다.

교실마다 학생이 가득해도 여학생은 많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으로 아들은 학교에 보내고 딸은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특히 첫딸은 집안의 밑천이라고 하던 시절이다. 어머니가 해녀인 가정에서는 딸도 그 대를 이었다. 딸의 손에 책가방을 쥐여주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제는 대를 이을 해녀 찾기가 힘들어졌다.

생활이 고달프다고 탄식하면서 안주 없이 퍼마신 독주 때문에 동네 어르신들이 간장염으로 백발이 되기 전에 유명을 달리하면서도 병원 문턱을 쳐다볼 뿐 들어설 수도 없었다. 병명을 제대로 알고 죽으면 덜 원통이나 하지, 무슨 병인지 어떻게 구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떠난 영혼은 헤아릴 수도 없다.

1970년대에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거지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형 또는 지인으로부터 닳고 해진 교복을 물려받아 입을 수 있는 것만도 행복이었다. 당시에, 우체국에서 임시직으로 우편을 맡은 적이 있다. 통신수단이 편지뿐이라 밀리는 업무에 애를 먹었지만, 더 애를 먹이는 것은 당시 일본에서 밀려드는 옷가지 소포였다.

길을 가다 보면 입던 옷을 수집하는 도구에 넘치도록 쌓인 옷가지를 볼 수가 있다. 일본에서 오는 소포에는 새 옷 두어 벌 빼고는 모두가 이런 옷이었지만, 입고 활보하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입던 옷이 몸에 맞지는 않지만 버리기도 아까워서 이웃에 건네주면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다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버릴 수는 있어도 줄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고지서가 밀려서 방문했는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명을 달리한 가족, 며칠씩 결석했는데 형식적 가정방문으로 결국 떠나보낸 아이, 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서툰 연기에 속아 돌아서고, 혼자 사는 노인은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쓰레기통에 갓난아기를 버리고 돌아서서 가는 미혼모는 과연 눈물이 없었을까, 리어카에 폐지 싣고 오르막 오르는 노인네 모습, 노숙자가 있고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늘어선 행렬이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가 없다는 말은 복지사회 훨씬 이전 얘기다. 질병, 장애, 노화의 신체적 문제뿐 아니라 실업, 재해, 빈곤 등 경제적 문제를 포함 국민의 생존권 보존을 국가가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게 헌법에 명시된 내용이라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1980년대 헌법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복지가 다른 복지 선진국에 비하면 늦게 출발했지만, 이만큼이라도 축복받은 복지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복지사회가 영속되기 위해서는 고령사회로 정형외과가 넘쳐나는 것보다 산부인과가 부족하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으면 좋겠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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