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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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호 / 수필가

늦은 가을 오후, 지리산 깊은 계곡에 있는 의신마을에 왔다. 화개장터에서 차로 20여 킬로를 오르다 보면 나타나는 지리산 천왕봉 아래 있는 오래된 화전 마을이다. 빨치산들의 은거지 중 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직접 와 본 것은 처음이다. 내가 의신마을을 찾아온 것은 1940년대 수년간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빗점골에서 죽은 ‘이현상’이라는 지리산 빨치산 지휘자를 만나보기 위해서다. 마을 끝 무렵에 ‘지리산 역사관’이라는 안내 표지가 보였다. 역사관 앞에 차를 세웠다.

70여 년 전의 지리산 빨치산의 행적을 더듬어 볼 기회가 될 것 같아 기대감을 안고 전시실에 들어섰다. 전시실은 이곳이 화전민 마을이었음을 상기시켜주는 화전민의 생활상, 농기구 등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 화전민의 고달팠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 전시실에 지리산 빨치산의 활동과 토벌 작전 관련 설명문이 게시되어 있고 지리산 빨치산 최고 지휘자이던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에 대한 활동 이력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잔잔한 흥분이 가슴 속에 물결처럼 일었다.

전도된 이념으로 허망한 꿈을 이루고자 했던 항일 독립운동가,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그의 슬픈 이야기를 게시판에서 읽었다.

이현상은 1990년 빨치산 출신 ‘이태’가 쓴 『남부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상영되고부터 지리산 빨치산과 이현상(1905~1953)의 실체가 알려졌다. 이현상은 충남 금산군 군북면의 중농의 집안에서 6남매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 명문 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사회주의에 심취하여 사회주의 혁명가와 항일 독립운동가로 변신하여 일제하에서 감옥생활을 거쳐, 지리산에서 남부군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1953년 9월18일 이 곳 의신마을 주변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사나이다. 그는 해방정국에서 박헌영 등과 함께 남로당을 조직하고 조국을 사회주의 혁명을 통하여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하고 있었다. 제주 4.3사건과 여순 10.19사건을 기화로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려는 꿈을 가지고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었다. 빨치산 남부군 사령관으로 토벌군과 대치하면서 수많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당하게 하고 순진무구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몬 장본인으로 많은 죄업을 쌓았다. 이현상 그는 북한 김일성에게 배척을 당하고 남한으로부터는 저주받은 비운의 빨치산 지도자였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부모와 자식을 버리고 지리산에 들어와 빨치산 활동을 한 것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꿈이요, 투쟁이었는지를. 내 아버지는 여순10.19 사건의 희생자다. 내 아버지의 푸른 꿈을 앗아간 간접적인 가해자이기도 한 그이기에 남다른 저주의 독화살을 퍼붓고 싶었지만, 인간적인 연민이 가슴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남부군』 저자 이태의 회고록에는 “말단 대원이던 나로서는 그와 대화 할 기회는 없었지만, 진회색 인조털을 입힌 반코트를 입고 눈보라 치는 산마루에 서서 첩첩 연봉을 바라보고 있던 이현상의 어딘가 우수에 잠긴듯하던 옆모습은 지금도 선명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라고 인간 이현상의 인상을 적어 놓았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며 지리산을 누볐던 슬픈 사나이. 그가 최후를 맞이했던 빗점골에 맴돌고 있을 쓸쓸한 영혼에 대해 합장으로 명복을 빌어주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다’고 외쳐대던 〈잊혀진 계절〉의 노랫말을 되뇌며 되돌아 내려왔다. 늦가을 저녁 햇살이 지리산 연봉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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