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있던 대나무가 스스로 일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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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탐라·동도·정의현 역사문화 깃든 길

예로부터 신령 증명한 ‘토산당’
주민들 믿음이 견고함을 나타내

나주 금성산 사신이 제주로 입도
신으로 대접 못 받자 재앙 일으켜
노여움 풀기 위해 여드렛당에 모셔

전설의 중심에 위치한 메뚜기모루
신비로운 분위기가 마을 에워싸 
1136번 도로가 지나는 메뚜기모루.
1136번 도로가 지나는 메뚜기모루.

▲오래된 마을 토산에는 오래된 이야기도 많다

오래된 마을에는 그만큼 오래된 이야기가 많기 마련이다. 그게 실제로 일어났었던 이야기든,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구술된 이야기든. 

거슨새미와 노단새미 전설이 그렇고, 비운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토산당팟당장 이야기가 그렇고, 오별장 이야기가 그렇다. 거기다, 토산은 예로부터 당의 힘이 세기로 유명했다. 그게 한동안 잘못 전해져 본의 아니게 토산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1702년 이형상 목사(숙종 28)가 제주에 부임해 와서 보니 제주에 당과 절이 너무 많았다. 백성들이 미신에 미혹돼 있다고 판단한 목사는 제주에 있는 당과 절을 모두 없애라고 명령했다. 당시 제주에는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곳곳에 당과 절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당을 다 없애는 것도 일이었고, 백성들의 반발도 무시하지는 못해서 신령을 보여주는 신당만은 남겨 두기로 했다. 신령을 증명하는 것은 굿을 해서 누워 있는 대나무를 신령의 힘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제주시에 있는 어느 당에서 “신령이 있다면 굿을 하여 눕혀 놓은 대나무를 일으켜 세우라.”고 명받은 무당들이 모여 굿을 하기 시작했다. 

굿이 절정에 이르자, 눕혀 놓은 대나무가 스스로 일어섰다. 신령이 증명된 것이다. 그 당은 무사했다. 그러나 대정의 한 당은 대나무가 바르르 떨며 일어서다 쓰러지고 일어서다 다시 쓰러지고 하다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결국 신령이 없다고 여겨 그 당은 소각됐다. 

이에 반해 토산당은 굿을 시작하자마자 눕혀 놓았던 대나무가 일어서는 것은 물론, 아예 마을을 한 바퀴 돌아다니다 당에 들어왔다고 한다. 
실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얘기는 그만큼 토산당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공고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토산 본향당.
토산 본향당.

▲토산 여드렛당 이야기

제주신화연구소 소장이며 시인인 문무병 박사의 자료를 통해 토산 여드렛당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토산 여드렛당의 당신은 나주 금성산의 사신(蛇神)이다. 제주에 입도하면서 미모의 여신으로 변신해 온평리 본향당 당신인 ‘멩오부인’에게 문안을 드리고 좌정할 곳을 문의했는데, ‘땅도 내 땅, 물도 내가 차지했으니 토산리에 있는 메뚜기모루(ᄆᆞ루)로 가라.’고 했다. 

그리하여 금성산 사신이 토산에 와서 좌정하려 했으나, 누구 하나 신으로 대접해 주는 이가 없었다. 
화가 난 신은 바람을 일으켜 수평선에 떠 있는 왜구의 배를 불러들여 난파시키고, 난파당한 왜구들은 토산 바닷가(올리소)로 올라와 마을 처녀를 겁탈했다. 

그 이후 시집온 지 얼마 안 된 강씨 며느리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신의 노여움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이를 풀기 위해(‘토산한집’ 또는 ‘여드레또’라고도 부르는) 나주 금성산 사신을 당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문무병 박사는 토산 여드렛당 신앙이 조선 중기에 일어난 천미포(川尾浦) 왜변과 관련이 있다 한다. 
1552년 천미포로 왜구들이 들어왔고, 왜구들이 토산리로 올라와 처녀들을 겁탈했던 사건이다. 
역사적 사건을 신의 노여움에 의한 재앙이라 보고 원령의 한을 달래기 위한 신앙심리로 삼은 선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거슨새미에서 바라본 메뚜기모루.
거슨새미에서 바라본 메뚜기모루.

▲메뚜기모루와 토산 본향당

메뚜기모루(ᄆᆞ루)는 토산리 2057번지 일대를 말한다. 동쪽으로는 마을 회관이, 남쪽으로는 너븐밭이, 그 너머로는 노단새미와 거슨새미가 흐르고, 그 물길을 따라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망오름이 남풍을 막아주듯 서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메뚜기모루가 위치하고 있다. 그 옆 감귤밭이 들어선, 햇볕 잘 드는 야트막한 동산에 서 보면, 나주 금성산 아기씨가 자신이 좌정할 곳으로 이곳을 정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을 어른들은 이곳에 오래전부터 매댁(梅宅)이라는 무당이 살았다고 해 메뚜기모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명이 메뚜기 떼와 관련해 비롯됐을 거라는 우리의 상상력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메뚜기모루 동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지붕에 노란 색깔을 칠한 집 한 채가 있었다. 아주 특별한 집이었다. 함부로 범접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영험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려서 두려워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그랬는지, 그곳에 나주 금성산 아기씨가 좌정한 곳이라는 본풀이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막연히 느껴지던 그런 분위기가 마을을 에워싸듯 돌고 있었다. 

지금은 그 노란 집이 아마 삼천교당이었지 않았나 생각되지만, 메뚜기모루를 중심으로 해서 남쪽으로 전설을 간직한 거슨새미와 노단새미가, 그 근방에 사찰 등 종교 관련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그 지세가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토산 본향당은 토산리 1938-1번지에 있다. 조립식 건물이다. 제주도 전체에 그 신령으로 명성을 떨치던 모습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믿음에 대한 농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당은 여성들의 전유 공간이다. 삶에 대한 애환을 위로받기 위해 찾았던 공간이다. 오래전 메뚜기모루를 애써 올라 이곳 당신을 찾아왔던 선인들을 생각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당신(堂神)에게 늘어놓던 신세 한탄, 혹은 푸념,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 속엣말을 지금의 여성들은 어디에서 하고 있을까. 지금 우리들에게 당신(堂神)을 대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남원읍과 표선면을 가르는 송천.
남원읍과 표선면을 가르는 송천.

▲TV 프로그램 하나가 남긴 피해

1980년대 어느 TV 방송국의 프로그램이었던 ‘전설의 고향’에 토산의 뱀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극화돼 방영된 적이 있다. 토산 여드렛당과 연관돼 전개된 내용은 사람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때문에 토산 여자들은 타지에 나와 집을 얻기도 힘들었다. 며느릿감이 토산 여자이면 보지도 않고 퇴짜를 놓기도 했다. 토산 여자들에게는 뱀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그 ‘전설의 고향’ 내용을 사실로 믿고 한 행동이었다. 

지금까지도 고향이 토산이라 하면 대뜸 ‘뱀 믿는다면서요? 정말 그래요?’라는 질문을 한다. 혹자는 ‘토산에 뱀이 그렇게 많아요?’ 한다. 차근차근 얘기해 주고 싶다가도 가끔은 그들이 갖고 있는 토산에 대한 공포심에 불을 지펴주고 싶은 못된 생각이 고개를 들 때도 있다. ‘조심하세요. 제 뒤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뱀신이 있다고요.’ 

(글·사진=토산리 출신 김연미 질토래비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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