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삶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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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 수필가

매주 월요일이면 글빛소리 합창단원들은 중앙로에 있는 연습실에 모여 한 시간 반 동안 시공부도 하고 노래연습도 한다. 몇 년 전 <뜨거운 싱어즈>란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팔십을 넘긴 유명 여배우가 감동적으로 노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 글빛소리 단원 중에도 팔십을 훌쩍 넘긴 선생님이 소푸라노 파트를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다. 올 1월에<시니어 삶을 노래하다>라는 타이틀 아래 일곱 번째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햇수로 치면 어느덧 일곱 해, 그동안 크고 작은 공연을 여러 번 했는데 2019년,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되기 직전 일본의 교토에서도 연주회를 가졌다.

일본에서의 3박 4일, 첫날은 교토의 유서 깊은 동지사대학을 방문하여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를 찾았다. 교토남부 우지강변에 있는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십여 년의 노력 끝에 세운 윤동주시비도 찾아 헌화하고 시를 낭송하였다. 다음 날은 (고향의집) 요양원을 방문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목포에 공생원을 세운 윤치호님의 아들 윤기님이 일본인 어머니(윤학자, 목포공생재단 회장)를 그리며 재일동포 1세들을 위하여 세운 곳이다. 한복을 입고 아리랑과 도라지를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들은 몸짓을 하고 손뼉을 쳤으며 눈물짓기도 하였다. 울컥한 마음을 간직한 채 돌아서 나왔다.

다음 방문한 곳은 교토의 (문화의 집) 정식 명칭은 나가오카키 기념 문화회관(중앙문화학습원)이다. 많은 문화강좌 중에서 제일 인기 있는 강좌는 한국어강좌라 하였다. 한국어선생은 성산포출신 김명희 선생인데 애기하다보니 신성여고를 졸업한 후배였다. 준비해간 한복을 그들에게 선물하며 같이 입고 사진도 찍었다. 그들의 한국어학습 공책에는 윤동주 시가 한국어로 빼곡히 적혀있고 그림도 간간이 그려져 있었다. 나도 뭔가 답례해야겠다 싶어서 학생 때 읽었던 설국을 얘기했더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한자로 설국을 쓰려는데 얼른 써지지가 않아서 ‘눈 설 자인데’ 하자 자기 눈을 가리킨다. ‘스노우’라는 말에 눈雪자를 바로 쓴다. 설국을 모르는 것 같아 가와바다 야스나리란 일본작가가 써서 노벨상을 받은 소설이라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워하였다. 웃을 때 덧니가 약간 드러나는 모습이 고왔다. 학습원 부근의 한 수강생 집으로 초대받아가는 행운도 받았다. 현관에서 거실로 가는 복도에 걸린 동양화 한 점이 고급스러웠다. 십 여 명 한국어 강좌 수강생들은 거실과 이어진 방에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는다. 차 대접과 함께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비숍의 ‘즐거운 나의 집’ 노래를 불렀고 그들도 일본어로 함께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 우리는 한 공동체가 되기도 하였다.

학습원에서 공연할 때 지휘자는 음향시설이 나쁘다고 걱정을 하였다. 강당은 꽤 컸지만 음향시설뿐 아니라 무대도 학습원 규모로서는 허술하였다 그저 강당의 간이 무대정도다. 고향의집 무대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2022.11)에서 윤기님의 기사를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막대한 비용을 무릅쓰고 사회복지시설로는 드물게 조명과 음향시설을 갖춘 200석 규모 문화홀을 지었습니다. 공연 한번 관람하는 것이 약을 드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때가 있지요. 어릴 적 배고픔 가운데서도 기쁨과 희망을 갖게 한 것이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요양원을 운영한 전문인으로서의 품격이 묻어 나옴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국에서 합창단이 왔다하여 관객이 족히 사오백 명은 넘게 모였다. 퇴직한 선생님들로 구성되었다는 악기 팀의 연주회에서 ‘호프만의 뱃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학생 때 배워 즐겨 흥얼거리는 곡이다. 음악은 만민 공통어의 효력을 지님인지 음악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한다. ‘이 음악 잘 아는 음악이다 여기 와서 듣게 되어 반갑고 기쁘다.’ 악보를 가리키며 떠듬떠듬 말하고 한국어강좌 수강생이 통역해주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는다. ‘제주도 가본 적 있다. 또 오시라’ 시니어들의 삶은 여기나 거기나 삶 자체가 바로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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