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위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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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의 서시 도입부다. 최근 몇 년간 시와 담을 쌓고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입에서 맴도는 구절이다. 윤동주의 서시는 우리 민족의 가장 사랑하는 시로 손꼽힌다. 핵심 시상은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화자는 ‘세상의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하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고 선언한다. 부끄러움은 유교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공자는 ‘덕과 예로 통치하면 백성들에게 부끄러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떳떳해진다’(논어 위정 3장)고 설명했다. 공자를 계승한 맹자는 타인의 악행에 분노를 느끼는 마음(수오지심)이 인간의 본질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은 외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한 집단이 설정한 도덕 기준을 어기거나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줬을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맹자는 이를 기초로 왕도정치의 정치관을 제시한다. 군주가 물리적 강제력으로 다스리는 패도정치(覇道政治)가 아닌 덕을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 권한을 놓고 벌이는 무한 경쟁이다. 이런 상황에서 왕도정치는 유토피아적 허구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왕도 대신 검찰권에 의한 패도정치에 쏠린 모습이다. 소통·협치와 연대·탕평은 거짓이었다. 친정 검찰에서 검사의 요직 배치로 엄혹한 외교·안보 상황을 풀어갈 기본적인 능력이 있는지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교 폭력 사건과 전직 고위검찰과 재판장 등이 관련된 50억 클럽 수사에서 제 식구 감싸기 등으로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최고조에 있다. 오죽했으면 진중권 전)동양대 교수는 검찰 출신 정순신 변호사 행태에 분노해 인간쓰레기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은 검찰에 의해 퇴색되고 있다. 검찰은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등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 했다. 참사 책임자 처벌은 오직 경찰 하위직에 그쳤다. 참척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으니 염치도 찾아볼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크고 작은 외교 실수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 일본과 정상외교는 심각한 수준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피고기업 대신 배상하는 제3자 변제 안,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 붙인 뒤, 서둘러 일본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고 한-일 관계를 복원했다며, 이제는 공은 일본에 넘어갔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렇게 다 내어줬음에도 현실은 대통령의 예상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굴욕적인 외교에 국민들은 공분하고 있으며, 치욕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데 대해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무거운 책임과 부끄러움을 느껴야한다.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기억하고 후대에게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깊이 되새겨야 한다. 정신대 이른바 성노예 강제동원 부정, 독도 도발과 교과서 왜곡,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무자비한 학살 등 극우노선을 취하는 등 일본은 부끄러움조차 모르고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짐승과 같다는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일침이 거칠게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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