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천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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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1. 은빛 연어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강을 향해 폭포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역주행이다. 힘든 여정을 겪은 연어일수록 강하고 튼튼한 알을 낳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동물은 환경에 따라 진화하기 때문이다. 모천 회귀하는 물고기, 눈부신 은빛 연어.

바다에서 자란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태어난 강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하도 멀고 험난한 역정이다. 회귀율이 0.4%, 100마리 중 거의 다 죽고 네 마리만 살아돌아온다. 길목에 서서 연어가 당도하기를 기다리는 포획자가 있다. 굶주린 곰들. 일격에 낚아채 팔딱이는 날것을 무자비하게 먹어 삼킨다. 모천 회귀하려던 연어의 꿈이 참담하게 무너지는 것은 그야말로 삽시다.

알에서 부화한 뒤 일 년을 탯줄을 끊은 강에서 살다가 바다로 갔다가 다시 하천으로 돌아와 일을 낳는 본능을 갖고 있는 연어. 죽음을 무릅쓴 모천 회귀는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예로부터 해 온 저들의 내력,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알을 까려는 오로지 그 본능일 뿐, 출생은 신비한 것이다.

고향을 등지고 객지에 오래 사는 사람들끼리 어쩌다 한자리에 모이면 목놓아 제창하는 노래가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봄의 고향. 한국인으로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더 열창한다.

남는 건 ‘그립습니다’. 사람이야 그런다 치고, 물고기가 본향을 그리다니. 연어, 참 신기하고 유별난 녀석들.

2. 피란민, 다들 마을을 떠나갔다.

6·25한국전쟁 때, 1·4후퇴로 북한 인민들의 대이동이 이뤄졌다. 너도나도 남으로 남으로 피란길에 오른 것이다. ‘40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가 불려지던 부산항이 피란민들로 포화상태가 되자, 국토 최남단인 제주로 내려와 섬이 북새통이 됐다. 그때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때라 기억나는 일들이 적지 않다.

못 살던 시절, 집집마다 구석구석 심지어 쇠막(마굿간)까지 내놓는 바람에 피란민들로 넘쳐났다. 도시에서 호사하던 사람들에게 피란살이는 어린 눈에도 참혹했다. 피란민들이 가을걷이가 끝난 고구마밭에 삼삼오오 무리 지어 들어가 이삭줍기를 해 마대에 담아 등짐으로 지고 나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전쟁 상황을 살피면서도, 전쟁의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정착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북한 사람들이 생활력이 강한 걸 그때 알았다.

쌀 한 톨 없던 그들의 생활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구좌 세화는 제주시와 먼 거리에 있어선지 오일장이 번창해 흥청거렸다. 추측건대, 오일장이 그들을 회생시켰을 것이다. 닥치는 대로 장사를 한 그들이 무섭게 자본을 키워 시장동의 상권을 거머쥔 게 아닌가. 마을에 빵집, 잡화가게, 신발가게, 세탁소 등을 처음 연 것이 그들이었다. 아이들도 중·고등힉교까지 마을에서 나왔다. 아. 이분들은 이곳에 정착하겠구나 했다.

한데 아니었다. 한둘씩 짐을 싸더니 몇 년 새에 집을 내놓고 다들 마을을 떠나갔다. 한두 사람 뻬고 모두 떠나갔다. 통일은 안됐지만 일단 섬에서 육지로, 고향 가까이로 자리를 틀자 한 것 아닐까. 꿈에도 그리는 고향을 향한 마음속의 발돋움이었는지 모른다. 한낱 미물인 물고기도 너울 치는 바다를 건너 태어난 강을 찾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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