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 꼼짝 고사리 꼬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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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뺨에 닿는 새벽 공기가 싸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스레 챙기고는 차에 올랐다. 친구들과 고사리 고단이라 부르는 곳에 가기로 미리 입을 맞춘 후, 그곳으로 향했다. 차도는 움직이는지 마는지 정차한 듯 긴 차량의 행렬로 언제나 짜증인데 새벽 시간, 도로는 온통 우리 차지다. 곧게 열린 도로를 따라 달리니 기분마저 상쾌하다,

어쩌다 나란히, 때론 앞뒤 한 방향으로 어둠을 가르며 달리는 차는 모두 우리처럼 고사리 꺾으러 나선 게 아닌가 싶었다. 한참을 달려 찜해 둔 장소에 도착했다. 옷이며 장갑 등을 재확인했다. 등산화에 끈도 단단히 매고, 모자도 벗겨지지 않도록 야무지게 묶고 난 후, 기다리는데도 쉬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고사리 꺾으면서 볼 손맛과 눈맛에 대한 기억과 기대 때문인지 쉬 걷히지 않는 어둠을 상대로 조바심쳤다. 기다리는 시간도 메우고, 새벽 추위도 거둘 겸 차라도 한 잔 마시자는 말에 내 마음이 네 마음인 양 대답은 모두 한 목소리다. 찬 기운 때문인지 서로는 누가 시킨 것처럼 하나같이 컵을 두 손으로 얌전히 감싸 온기를 나누고 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자 제각기 흩어져 꺾기 시작했다. 넓은 들판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지만 무엇인들 쉬운 게 있을까. 한참을 찾아 헤매노라니 작년 이울다가만 덤불 속에 기다랗고 통통한 것들 네댓 개가 보였다, 잠시 찬찬히 걸음을 옮기는데 웬걸, 그 주변으로 고사리가 모도록이 나 있었다. 바빴다. 눈이 확인한 그 즐거움을 마음으로 빠르게 배달한다. 오호 쾌재다.

꺾일 때마다 톡톡하며 손끝에서 전해지는 재미가 귀에 닿자 그 소리도 제법 곱다. 고사리 꺾을 때면 언제나 느끼지만 고사리는 조금의 욕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굵고 긴 것일지라도 알맞은 길이에서 톡 하는 소리가 나게 꺾어야 한다. 아까운 마음에, 혹은 욕심에 조금이라도 길게 잡고 당겨지듯 꺾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삶아 놓아도 그 부분은 질겨서 이중으로 손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아깝지만 놓아야 할 부분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삶이 그렇듯.

가시덤불을 헤집고 다니느라 장갑 낀 손이며 다리가 어디서 긁혔는지도 모르게 긁힐 때도 허다하다. 너른 야산 속 제멋대로 자란 것처럼 보여도 가끔은 자연도 꺾는 이를 상대로 한없이 자세 낮추는 법을 일러준다. 보이는 걸 꺾는 데도 때때로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고, 더러 무릎을 꿇고 거친 곳을 들어가야만 내어줄 때가 있다. 몸을 낮추어 꺾어가든, 마음을 꼿꼿이 세워서 놓고 가든 어느 것도 강제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선택권도 부여한다.

고사리가 한창 제철이라도 한 번에 두 개씩 꺾게도 않는다. 어쩌다 고사리밭이라는 곳에 들어 한두 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실수이거나, 그중 하나는 당겨지며 꺾여서 두 번 손을 거치게 된다. 거저는 용납하지 않는다. 허리를 깊이 구부리든, 이내 고개를 숙여 몸을 낮춰야만 자연은 정직하게 그것에 응답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물 사이에도 이해를 구하는 데는 그에 맞는 적절한 눈높이와 행동이 필요함이다. 만 가지 꽃들이 핀다는 오월. 계절의 막바지에서 봄은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인가보다, 색색이 왁자하게 핀 들꽃 사이로 어릴 적 재밌게 불렸던 전래동요인 ‘꼼짝 꼼짝 고사리 꼬옴짝’을 허밍으로 부르며 늦기 전에 한 번 더 들판을 헤집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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