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불효자는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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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중 / 수필가

한 손에 막 대들고/또 한 손에 가시 들고/오는 백발 막으려고/문 앞에 서 있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지름길로 오더라

시인의 마음은 인생무상을 말하고 있다. 거역할 수 없이 찾아오는 늙음을 서글퍼 한 것이다.

올해도 어버이날을 지나고 나니 효심 깊은 자녀들에게 사랑받은 행복한 어머니들의 뒷얘기가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찾아오지도 연락도 없는 자식으로 인해 카네이션 꽃 한 송이 가슴에 달아보지 못한 채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외로워 서럽게 울었다는 어느 노인의 우울한 얘기도 들려온다.

지인이 들려준 노인의 사연은 청춘에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인고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외아들을 정성을 다해 키웠으나 아들은 자라면서 부모 잘못 만났다는 탓을 하며 반항도 하고 가출도 하며 어미 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모양이었다. 아들은 결혼 후에도 효도는커녕 늙었으니 주는 밥이나 먹고 참견하고 간섭하지 말라는 듯 노쇠한 어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며 작은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왜 그랬느냐고 따지고 들기가 일수였고 폭언도 서슴없이 해대곤 하더니 끝내 양로원으로 어머니를 보낸 후에는 아예 찾아오지도 연락도 끊었다는 기막힌 사연이었다. ‘너를 어떻케 키웠는데’는 세상에 너밖에 없다고 키웠기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 부모 생각할 리가 없는 것이니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이다 싶다.

사람들은 효 사상이나 경로사상이 사라져 간다고들 개탄하나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효의 개념도 달라졌다. 옛날에는 효녀 심청이라고 했으나 요즘은 심청이 만큼 불효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눈을 뜨기 위해 딸이 죽어야 했다면 그 아버지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 텐데, 그런 불효가 어디 있느냐는 논리다

지금은 100세, 장수 시대가 아닌가. 자식도 부모와 같이 늙어가는 처지다 보니 효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제일 속 편하고 그럴 수 있을 때 서럽다고 우는 노인이 되지 않는다. 찾아오면 반갑고 안 와도 괜찮은 노인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걸을 수 있는 노인이 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건강에 각별히 유념하며 움직이는 활동을 많이 해야 하고 무엇이든지 즐겨 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혼자의 시간이 외롭지 않고 행복하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년에 들어 생존의 의미를 강하게 나타내는 사람들은 많다. 화가 르누아르는 73세가 됐는데도 손가락마다에 붓을 잡아매고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62세에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고 70세 때는 장거리 경마에도 출전하여 젊은이와 당당히 겨루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을 찬미하고 존경과 감사의 뜻으로 정해진 어버이의 날이다. 가요신청 제1순위 곡이 ‘불효자는 웁니다’라고 하나 진짜 불효자는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내 안에도 미래의 노인을 잉태하고 있음을 불효자는 왜 모르리. 그나마 우는 사람이 효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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