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스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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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옥 / 수필가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무심히 떨어지는 꽃잎도 그리움의 몸짓일까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세월도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과 맨 처음 만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사십 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와 맞선을 보고선 서로가 심드렁하던 중 어머님이 저를 한번 보고 싶다며 마주 앉게 된 일이 인연을 맺게 해주었지요. 서른 갓 지나 혼자되신 어머님은 그때 빛바랜 스웨터를 입고 있었지만, 내가 기대고 싶을 만큼 편안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이보다 어머님께 마음을 빼앗긴 걸까요. 어쩌면 몇 생의 인연으로 현생에 다시 만난 사이였을까요. 온 동네가 눈 속에 잠긴 날 면사포를 썼습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영화 ‘미나리’역의 순자가 떠오릅니다. 어머니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순자가 아칸소 초원에 씨앗을 심듯, 어머님의 안뜰에도 미나리를 닮은 뿌리가 자리매김하고 있었겠지요. 어느 며느리가 어떻다는 궂은 내색 없이 그냥 아끼며 보듬어주셨던 나의 어머님. 저는 어머님의 속내를 헤아릴 줄도 모르던 철부지였지요.

한 살씩 나이를 얹힐 때마다 옛일들이 무수히 떠오릅니다. 신혼 시절 친정어머니와 어머님과 함께 한 방에서 잠자리에 든 일이 있었지요. 어머니는 내 옆에, 어머님은 아들 곁에 누워 이야기꽃을 피우며 긴 밤을 보냈습니다. 사돈이 아니라 자매 같은 사이로 서로를 위하며 사셨던 두 분. 보고 싶습니다.

아흔을 넘긴 친정어머니가 병환이 깊어 저의 집에 잠시 머물 때 일입니다. 밤을 새우며 온몸으로 돌봐주던 분이 어머님이셨습니다. 타들어가는 내 어머니 입가로 물 한술씩 떠 넣으며 고통이 잦아들고 평안하기만을 염원했던 분도 어머님이셨지요.

어느 날 어머님이 떠난 빈집에 들게 되었습니다. “오느라 고생했다.”며 마중 나오던 어머님의 음성이 귓가를 스치는 듯하여 귀를 기울였지요. 방문을 여는 순간, 그날에 입으셨던 하얀 한복 한 벌이 먼저 제 품에 안겨졌습니다. 손이라도 마주 잡은 듯 어머님의 살갗 내음이 훅 내게로 스몄습니다. 손수 지은 저고리 깃에는 생전 어머님 성정처럼 얼룩 한 점 묻어있지 않고 자애로움이 배어 있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이 지금도 아른거립니다. 매서운 추위에 두 분 어머님이 화들짝 걱정되더군요. 그예 걸음을 재우치며 동문시장으로 향했지요. 다닥다닥 붙어있는 점포 안에서 유독 제 눈길을 끌었던 옷이 꽃무늬가 수놓아진 스웨터였습니다. 시린 날 생각만으로도 화사해지길 바라며 그 옷을 고르게 되었지요. 두 분은 스웨터를 입자마자 꽃구경 가는 사람마냥 얼마나 좋아하셨던지. 주름진 함박웃음에 금세 겨울이 비껴갈 것 같았습니다.

어머님 그리고 어머니. 시간이 흐르다 머문 그 곳에도 일 년 열두 달 꽃이 피겠지요. 손때가 묻은 스웨터에 새겨진 꽃이 질 줄 모르고 어머님의 잔잔한 미소를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어머님은 일상에서 ‘착하다’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해주셨습니다. 성에 차지 않은 일이 있어도 가만히 지켜보던 어머님. 선함을 믿고 욕심을 덜어내며 사셨던 삶에서 나온 말씀이겠지요. 어머님이 평소 들려주던 이 말씀은 제 삶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운 어머님. 쓰다가 못다 한 말이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어느 작가의 글을 나지막이 되새겨봅니다.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내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고 이 지상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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