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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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해연풍’으로 발붙여 ‘안경 너머 세상’에 이르기까지 근 25년, 사반세기를 건너왔다. 「제주일보」와의 인연이 그렇게 깊다. 더욱이 집필 중인 ‘안경 너머~’는 제목 그대로 사회, 문화, 시사, 풍속을 아우르며 ‘세상’을 소재로 망라한다는 야멸친 뜻이 있었다.

주 1회가 쌓여 370회를 넘어섰으니 감회 유별하다. 진작의 포부를 얼마만큼 챙겼는지는 필자 자신도 눈앞이 물안개로 어둑새벽이다. 가물거려 안 보이고 엉거주춤 수그러들어 등마저 구부정하다. 실토하거니와, 시작하던 때나 지금이나 독자가 두렵다. 구상에서 퇴고까지 시종 머리에 이고 등에 진 짐에 부대낀다. 좋은 글의 절반이 퇴고의 몫이라 해 오는 터라 몇 차례 끙끙 대다 담당 기자에게 보낸 뒤에도 낙숫물처럼 눈앞으로 떨어지는 오탈자며 자지레한 오류들. 이쯤 되면 민폐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 매번 낯없다.

그런데도 신문에 하다 만 것처럼 문제가 붕 떠 있을 때 필자는 참 괴롭고 성가시다. 퇴고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백번 맞다. ‘이번에는’ 하고 임전 태세를 가다듬지만 꼬리를 잘라내지 못한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이 일이다.

이렇게까지 나를 지독히 몰아넣는 이유가 있다. 독자에게 다가갈 것인데, 내용이야 어쨌든 문장만은 깔끔해야 예의이기 때문이다. 시나 수필을 쓰며 혹독한 외로움은 겪지만 칼럼처럼 둔중한 책무감이 따르는 글은 없을 것이다. 내겐 쓸수록 어려운 게 칼럼이다. 불특정 다수, 형형한 독자들의 눈이 글을 샅샅이 훑는다. 쓸 때마다 긴장하게 되는 이유다.

칼럼을 쓰며 감동한 사연도 있다. 연전, 미국에서 귀국해 수필로 등단한 팔순의 김경림 수필가(‘사노라면’을 쓰던 중 부군 간병으로 중단)가 그간 ‘안경 너머~’를 스크랩해 왔다지 않는가. 머잖아 출간하려고 편집이 진행 중인 등단 30년 회고 《여든두 번째 계단에 서다》에 화보를 엮느라 애쓰고 있는 양재봉 시인(‘사노라면 필진’)과 등단지 『한국문인』 작가회에서 두 분의 얘기 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게 아닌가. 양 시인이 김 수필가 댁(함덕 거주)으로 찾아가 스크랩북을 카메라에 담아 ‘김경림 수필가 제공’으로 책에 올리게 마무리를 끝냈다. 뜻밖의 따뜻한 손길에 책이 한 켜 영글 것이라 여간 뿌듯하지 않다.

세상에 내 칼럼을 낱낱이 가위질해 스크랩하다니. 입이 열이라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김경림 작가를 중앙문단에 추천한 소중한 연(緣)이 내 책에 이름을 올리는 인연으로 이어진 게 각별해 더 없이 기껍다. 살갑고 흐뭇한 마음 무슨 말을 빌려 표현하랴. 지면으로 경의를 표한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있다는 믿음은 나위 없는 기쁨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다. 언제든 말끔히 그 속내를 털어놓아 가며 이 얘길 하고 싶었다. 항상 좋은 글을 올리는 「제주일보」 오피니언 필진들께 진심으로 격려의 인사를 올린다. 필자, 어쩌다 포병객(抱病客) 처지가 됐으나 건강을 되찾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칼럼에 몰두하다 보면 여름으로 건너가는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요즈음 쓰면서 한참 힐링하는 중이다. 기꺼이 쓰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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