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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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일본의 바둑 고수를 상대로 하는 대국을 열흘가량 앞두고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전치 25주의 중상을 입게 된 바둑기사. 그는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머리와 두 눈, 오른손은 멀쩡하다”며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국에 나선다. 모두 7번을 두는 대국에서 제1국은 불참으로 실격. 제2국에 나선 그는 왼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링거와 진통제 주사를 맞아 가며 바둑돌을 올려놓는다. 결과는 완승. 이른바 ‘휠체어 대국’으로 기억되고 있는 재일교포 프로바둑기사 조치훈의 이야기다.

끝내 결과는 4대 2로 패하게 되지만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광경은 ‘바둑을 둘 때 목숨을 건다’는 그의 바둑에 대한 의지를 증명해 보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그래 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말을 종종 했다고도 한다. 목숨을 걸 만큼 그의 모든 것이기도 한 바둑을 ‘그래 봤자 바둑’이라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냉소적으로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바둑기사를 꿈꿨던 사회 초년생의 직장생활을 현실감 있게 그린 드라마 ‘미생’속 주인공이 마치 조치훈 기사와 대화하듯 하는 독백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바둑 한판 이기고 지는 거 그래 봤자 세상에 아무런 영향 없는 바둑, 그래도 바둑, 세상과 상관없이 그래도 나에겐 전부인 바둑. 왜 이렇게 처절하게 치열하게 바둑을 두십니까? 바둑일 뿐인데. 그래도 바둑이니까 내 바둑이니까, 내 일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

누군가의 말처럼 ‘장롱면허’가 넘쳐나는 자격이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은 천운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나 역시 사회복지의 크나큰 수혜자 중의 하나인 셈이다. 거기에 ‘좋은 일’한다는 덕담은 덤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 한다는 소릴 들어도 측은지심 가득한 누군가의 선심에만 기대해야 하는 ‘처우개선’을 매년 무한 반복하며 요구해야 하는 부끄러운 속사정을 알고 나면 ‘그래 봤자 사회복지’일 뿐이다. 어쩌면 ‘그래 봤자’인 일을 생업으로 삼은 게 안쓰러워 좋은 일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도 사회복지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깨끗하게 씻겨진 밑반찬 통 안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감사 편지를 담아 보낸 장애인 분이나, 추운 겨울날 버스를 갈아타며 검은 비닐 봉투에 양말 두 켤레를 담고 찾아오신 어르신을 떠올리거나, 그게 뭔지도 모르지만 우리 아빠는, 우리 엄마는 ‘사회복지사’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사회복지’이기 때문이리라.

나 하나뿐이겠는가? 십수 년을 일해도 호봉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성과급은 언감생심 수당이나마 근로기준법대로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하는 것이 사회복지 현장 가족들이 처한 불합리하고 냉혹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현장을 떠나지 못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들의 답은 하나같이 분명할 것이다. “그래도 사회복지니까, 내 일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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