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듯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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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밀리는 차량 행렬에 좌우를 살피다 잽싸게 옆 차선 진입에 성공했다. 웬걸, 신호가 바뀌어도 늘어선 차량은 움직임 없이 도로 위 그대로다. 짜증과 지루함에 무심코 잠시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시간을 이기며 높게 자란 가로수. 푸르름 깊은 신록이 눈에 닿자 상쾌함이 전신을 관통하듯 조바심 난 감정을 착하게 눌러준다.

이어 바라보는 눈높이에 ‘버스 타레 갈때랑 와리지말앙 미릇 강 지들립서!’ 등 제주어로 쓰인 버스 정류소의 투명 비가림막에 익숙하듯 낯선 문장이 눈으로 들어왔다. 육십여 년을 이곳에서 나고 자라도 얼른 눈에서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던 말글. 버벅대며 읽고, 한 번 더 읽고서야 미리 나서지 못한 행동을 되짚게 하는 말임을 알아차렸다.

언어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소리나 문자 따위의 수단’이라 한다. 대상이 누구든 언어라는 매체 즉 읽고, 쓰고, 말하고, 듣기로 소통의 대부분을 해결한다. 아까 본 글도 말로 하면 곧 알아들을 것을, 글로 써 놓아 얼른 와 닿지 않았다.

이곳에 사는 필자와 비슷한 세대에선 표준어로 말을 한다는 것이 영 불편하고 부자연스럽다. 늘 말하는 제주어와 달리, 표준어로 말하려면 말 그 자체를 의식해야 해서다. 제주어로 말하고 듣는 데는 어색함 없이 물 흐르듯 편안한데 읽거나 쓰는 데는 이만저만 불편하고 서툰 게 아니다.

말하고 듣는 일은 늘 하는 일이지만, 정작 글로 써 볼 일은 거의 없기에 읽는 것 자체도 어렵다. 그 짧은 문장을 읽어도 쉬 와닿지 않아 재차 훑고서야 뜻을 알아차리니 말이다. 읽느라고 애쓴 것에 비해 해득은 참 쉬웠다.

한때 제주어는 이곳 제주에서조차 홀대받던 때가 있었다. 필자 또래 초등교육을 받을 당시 대다수는 선생님께서 뭘 물으면 ‘네, 아닙니다, 맞습니다’로 대답은 극히 짧은 단답형이었다. 평상시 대화는 제주어로, 표준어는 오로지 학교에서 발표 때나, 책 펴 놓고서나 익혔으니 말이다. 표준어로 내 의견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당시 정서상 말을 좀 길게 하면 어른께 말대꾸로 비추어져 ‘버르장머리 없는 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가정교육 운운하는 통에 말이 더 짧아졌는지도 모른다.

이런 제주어가 지금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전하고 육성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에 맞춰 오랫동안 숨죽였던 제주어가 각 분야에서 깨우고 키우고자 노력한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신문방송은 물론 문화예술계서도,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에는 배움터에서 제주어를 익히기 위해 학습지원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 덜 세련돼 보이고, 덜 다듬어진 듯 취급받던 제주어.

이제 아끼고 보전해야 할 말과 글로 인정받고 육성한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오랜 시간 웅크렸던 제주어, 기지개를 시작으로 높이 비상하길 바란다. 말하고 들을 때의 편안하고 익숙함처럼, 읽고 쓰는 데도 모두가 불편 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자랑스러운 제주어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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