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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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주추를 놓은 게 지난해 그믐 무렵이었지. 왜 하필 겨울 추위에 건축일까. 그건 무슨 사정이 있었을 터다. 짐작거니 살던 집이 기울어졌거나, 낡아 강풍에 위험할 것이라꼬 짚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새끼를 치려는 계획에 맞물려 더는 지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까치가 얼마나 영특한가.

하루 한 번 아파트 동 둘레 숲길을 걷다 길이 끝나는 지점의 의자에 앉아 쉬면서 한적한 한때를 보내는 우리 부부에게 좋은 볼거리가 됐다. 까치 부부가 눈앞 10미터 워싱턴야자수에 둥지 짓기에 착수했다. 너른 잎이 너울거리는 나무의 우듬지를 조금 내려선 자리다. 굵은 줄기에 큰 잎이 돋아 나간 시작점이라 큰 바람에도 동요가 없겠다. 녀석들, 터를 고를 때부터 영리하고 야무지다.

나뭇가지와 진흙을 건축자재로 한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나는 어릴 적, 초가를 올리면서 동네 장정들이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마당에 쌓인 흙에 물을 주며 발로 짓이기던 장면을 떠올렸다. 흙을 놓아 돌을 층층이 올려 벽을 쌓고 그 위로 지붕을 이던 역사(役事). 흙에 산도 짚을 섞어선지 삼대를 살아도 끄떡 않던 섬 주민들의 집이었다.

까치 부부는 빠르고 바지런했다. 한쪽으로 동행하거나 다른 쪽으로 날아가고 날아오곤 했다. 진흙을 물고 오는 걸 눈여겨보려 했지만, 부리에 물고 있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 눈이 놀라운 것을 포착했다. 한 녀석이 숲속 늙은 벚나무에 앉더니 생가지를 꺾는 게 아닌가. 한쪽 발로 가지 끝을 누르고 부리로 몇 번 쪼아 꺾는다. 제 몸길이 두 배가 넘는 걸 물고 가더니 서까래로 걸쳐놓는 게 아닌가.

드디어 물 잘 빠진 사토에서 자란 큼직한 수박 만한 집이 둥그런 모습을 드러냈다. 준공이었다. 그로 며칠 지나더니 갑자기 까치 부부의 내왕이 잦다. 새끼가 태어났음을 그들의 가쁜 울음소리와 낢의 화급한 몸짓에서 알아차렸다. ‘드디어 탄생했구나. 신축한 둥지에 꿈틀거리는 생명들이 앙증맞겠구나.’

까치가 새끼를 치자, 우리 부부도 자연, 이곳을 자주 찾게 되고 머무는 동안이 길었다. 가만 보니, 하찮아 보이는 녀석들의 사소한 몸짓, 지나쳐 버리기 쉬운 소소한 걸음 하나에도 뜻이 담겼고 생각과 의도가 들어 있어 놀랐다.

그들은 새끼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둥지를 오갔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곧바로 둥지에 내리지 않는다. 옆 가지에 앉아 주위를 살핀 뒤 들어갔다. 천적에게 둥지가 노출되지 않게 하려는 것, 새끼를 보호하려는 모성 본능이 아닌가. 네다섯 번의 공중전을 목격했다. 까마귀 한 마리가 기습해 오자, 까치 부부가 공중을 가르며 까마귀를 쫓아 괴성을 질러댔다. 혼쭐났던지 까마귀는 다시 얼씬거리지 않는다.

웬일일까. 홀연 까치가 둥지를 떠나고 없다. 숲 가에 앉아 고개를 젖혀가며 바라봐도 둥지 언저리엔 아무런 낌새도 없다. 적의 내습을 막아내며 다시 찾은 평화인데, 저들은 왜 애써 지은 둥지를 버린 걸끼. 거닐다 와 앉으면 드나드는 까치를 보며, 새끼를 잘 키우라 응원했는데, 그들은 더 안전한 곳으로 떠났다. 버려진 둥지엔 바람만 들고 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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