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주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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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논설위원

40대 초반 어느 날, 한 제자가 찾아와 주례를 부탁한다. 나와 나이 차이가 별로 없어 그저 하는 말로 들었는데, 얼마 후 신부와 함께 찾아와 예를 갖추어 부탁한다.

엉겁결에 승낙하고 집에 돌아와서야 상황이 엄중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수업은 때때로 “오늘은 이쯤하고 다음 시간에 하자”라며 넘길 수 있지만, 주례는 뜻 같지 않다고 “다음에 하자”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식순과 이런저런 주례사를 찾아 나만의 주례사를 작성하여 수차례 읽고 연습하였지만, 결혼식이 다가오니 여전히 불안했다. 주례사 내용이야 거의 외울 정도로 숙지하였지만, 단지 중얼거렸을 뿐, 식장에서 말하는 톤으로 연습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식장의 상황에 맞는 연습이 필요했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2시간 정도 전에 제주대의 숙소를 나서 신제주로 통하는 길을 따라가다 어느 야산(지금은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입구에 차를 세우고, 깊숙이 들어가 식장에서 주례사를 하는 톤으로 3차례 연습하고, 식장에 들어갔다.

노력한 덕분일까? 식이 끝나자 신부가 수차례 절을 하며 감사하다고 한다. 식장에는 신부의 큰아버님이 계셨는데 큰아버님께서는 당신의 딸(신부의 사촌 언니)이 결혼하는 날, 주례선생이 못마땅하다고 주례선생의 목을 잡고 호통을 치셨단다. 그런데 그분이 “저분 주례 처음 서는 것 맞아?”라며 칭찬하셨단다. 주례사의 내용에 “신랑과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효도할 때, 자녀들도 효도하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자 왈, 맹자 왈’하는 효도에 대한 말을 내가 진정 알기나 했겠는가? 그저 책에 나온 소리이니 말했을 뿐이 아니었겠는가?

이제 결혼 날짜를 받은 딸을 바라보며, “내가 주례를 선다면 어떤 주례사를 하게 될까?” 생각해 본다.

너만 똑똑한 것 아니다. 네 배우자도 너 같아 만난 것 아니니? 네가 옳으면 배우자도 옳다. 서로 자기 생각만 고집하면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타인들과는 달리 항상 하나의 같은 방향만을 바라보며 산다. 의견이 다른 것은 방법이 다른 것이지 목표가 다른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결혼이란 서로 다름을 조화시켜 둘이 하나 되어 사는 것이란다.

혹 살다가 서운하여 서로 언성을 높일 날이 있을지라도, 홀로 삭일 뿐, 그것을 부모님께 발설하지 말라. 듣는 부모님은 마음이 아플 것이다. 친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 겉으로는 너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겠지만, 돌아서면 너의 소중한 배우자를 얕잡아 보게 될 것이다.

잊지 말라. 대화할 때면 반박자 쉬어 대답하고, 반박자 쉬는 동안 잠시 배우자의 입장을 돌아보기 바란다.

시작은 힘들지만, 곧 풍족하게 될 것이다. 재능이든 재력이든 움켜쥐려고만 말고 남거든 베풀라. 너희가 우리 나이가 되면 찾는 사람이 많아 외롭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들을 앞으로 1년만 한순간도 잊지 말고 생각하라. 잘 지키면 단지 1년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에는 애쓰지 않아도 익숙해져 너희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렇게 아옹다옹 살다 보면, 훗날 지난날을 돌아보며, 티격태격했던 날조차도 행복한 날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아빠의 오랜 꿈이었다. 행복하거라.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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