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와 한 여름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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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여름은 소나기의 계절이다. 여름에는 소나기와 작렬하는 태양과 몸을 까맣게 그을리게 하는 뙤약볕이 있다. 몇 번일지 알지 못하는 폭풍우와 태풍에 맞서 이겨내야 풍요로운 가을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여름철 쏟아지는 빗줄기는 소설가 황순원의 대표작 ‘소나기’를 생각하게 한다. 황순원의‘소나기’를 읽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중학교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게재 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아마 없을 듯하다. 사춘기 한 소년이 서울에서 왔다는 윤초시의 증손녀를 처음 만나 이성에 눈떠가는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다.

이처럼 애틋하고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가 여름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이뤄져 있어,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면 문득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읽었던 기억과 나의 유년 시절로 되돌아가 있는 듯 행복한 심사에 젖어든다. 책속에 소년이 소나기를 맞자 입술이 파래지며 몸을 떠는 소녀에게 비를 피하게 하는 쇠락한 원두막, 개울가, 물장난, 조약돌, 징검다리, 텃논, 가을걷이, 허수아비, 새끼줄, 참새, 송아지, 초가집, 비안개, 먹장구름 등 이런 낱말들이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 고향은 제주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물이 굉장히 풍부하여 도내에서는 논밭의 면적이 제일 넓었고 논농사를 많이 지었다. 물이 항시 흘러 무논이 있었고, 이천오백 석 이상의 벼가 수확되기도 했다. 들판에는 수박, 참외밭 원두막이 있는 곳에서 보냈다. 여름철에는 무수천의 상류 진소도에는 오염되지 않는 맑고 차가운 물이 있어 멱을 감고 각종 수영을 배웠다. 그리고 원두막 주인이 낮잠 자는 틈을 이용하여 원두막 반대쪽 구멍으로 기어들어가 참외서리와 수박서리는 스릴 넘치고 가슴이 쾅쾅 뛰는 순간이었다. 고향친구와 함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즐겁고 행복한 추억거리다. 특히 같은 문학회원 홍창국 시인은 조상의 ‘기제사’ 설, 추석을 같이 지내는 동네에 거주하는 친족이었고, 어릴 적 고향 곳곳에 이루 말로다 할 수없는 추억이 깃들어있다. 또한 논두렁길을 걸으며 개구리를 잡아 불에 구워먹었는데, 개구리 뒷다리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그립다. 그때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빨리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차가운 빗줄기에 온몸이 다 젖고 나면 왠지 시원한 느낌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 하늘은 없다. 비가 오지 않으면 오색찬란한 무지개는 뜨지 않으며 하늘은 아름답지 않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 하늘은 맑고 태양은 더욱 빛난다. 소나기가 왔기 때문에 무지개가 떴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왜 인생에 불행의 소나기, 고통의 소나기가 퍼붓느냐고 원망한다. 그러나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고통에 맞서는 편이 낫다. 달라이 라마는 아무리 불운한 삶, 고통도 ‘그 고통에 맞서다 보면 결국은 차차 좋아질 것이다’라고 했다. 어릴 때 소나기 속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던 것처럼 비록 고통의 소나기가 퍼붓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수 있는 슬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고통의 인내는 생기와 활력을 주는 삶의 소중한 영양소가 될 수 있다. 칠순의 나이에 고난과 질곡의 삶에서 얻은 지혜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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