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거수를 바라볼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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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기나긴 세월의 풍상을 짊어진 노거수 앞에 서면 숙연해지며 경외심이 인다. 온갖 풍파의 상흔에도 의연한 생명의 자태에 압도되는 탓일 게다.

집에서 10여 분 걸으면 마을 본향당이 있다. 그곳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당산목 세 그루가 자란다. 수령 350년과 300년의 푸조나무와 수령 300년 팽나무이다. 수령이 많은 푸조나무는 1982년, 나머지는 1990년 보호수로 지정됐으니 강산이 두세 번 변하는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내가 처음 본 12년 전과 지금의 상태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하다. 시간을 움켜쥐는 힘을 보며 사람들은 신령스러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노거수들이 다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아니다. 멀리 이식되기도 하고 여러 용도로 한순간에 잘리기도 한다. 근처 마을회관 입구 쪽엔 커다란 팽나무가 있다. 아마도 건축 당시 다른 나무들은 잘렸어도 덩치 덕분에 이 팽나무는 죽음에서 벗어났을 테다. 지표 쪽에서 쌍둥이 같은 아름드리 두 가지가 하늘로 치솟는다. 어림잡아 수령이 100년은 넘을 듯하다. 나뭇가지들이 2층 지붕보다도 높게 자라며 어떤 불편을 끼쳤는지, 지난해엔 절반쯤 뭉텅뭉텅 잘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꼴이다.

올봄을 지나며 한 몸통은 새로 싹을 틔워 자라는데 다른 하나는 목숨 줄 놓은 모양이다. 한 몸체인데 왜 이렇게도 다를까 살펴보니 두 몸이 연리지처럼 둥치를 껴안고 자랐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눈으로 봐야 새로운 의미가 다가오는 걸 실감하며, 주어진 시련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이럴 바엔 살아서 뭘 해 하며 눈을 감은 쪽과 그래도 살아봐야지 하며 용기를 낸 쪽의 대비다. 살아야 생명이다. 푸른 잎들이 살아가라 응원한다.

집 북쪽 울타리 너머로 수형이 아름다운 소나무 가지들이 풍경을 이뤘다. 곶자왈에 막혀 온몸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동산 기슭의 에움길을 걷다 과수원 농로를 통해 어렴풋이 그 소나무들을 바라보곤 했지만, 다가가 보굿을 만져보진 못했다. 왠지 범상치 않은 기운이 서린 곳만 같아서다. 인터넷을 통해 네 그루 소나무가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음을 알았다. 맏이는 수령이 200년이었다. 몇 년 전 재선충이 창궐할 때 잎이 누렇게 변하더니, 어느 날 기계톱의 굉음에 떠밀려 애석하게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생명체는 유한한 것,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그 부재가 종종 살아나 그리움과 추억을 낳는다. 그러고 보면 좋은 삶이란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한 기억을 남기는 과정이 아닐는지.

조오현 시인의 <아득한 성자>라는 시를 풀어보며 마음을 다지곤 한다. 하루살이 떼는 오늘이라는 하루에 뜨는 해 지는 해 다 보고 더 볼 게 없다고 알 까고 죽는데, 자기는 오래 살아도 어느 하루 제대로 산 것 같지 않으니 하루살이야말로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성자라지 않는가.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질이란 걸 새기라는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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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련 2023-07-13 16:37:12
노거수를 바라보며 삶을 돌아보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