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의 쇠똥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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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반하(半夏). 여름의 반이다. 이름도 곱다. 제주에서는 삼마라고 불렀다. 사두초(蛇頭草)라 불리는 천남성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이다. 천남성은 과거 임금이 내리던 사약의 원료다.

그러니 이름이 고운 반하는 독을 품고 있는 녀석이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초여름.

10원짜리 ‘라면땅’이나 20원짜리 ‘자야’라는 과자를 먹기 위해선 삼마를 캐야 했다.

어떤 친구는 값이 많이 나가는 지네를 잡으러 다녔다.

지네를 잡다보면 손에서 비릿한 냄새가 배었다. 그래서 지네를 포기하고 삼마를 선택했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이 밭 저 밭으로 돌아다녔다.

도둑도 아무 집이나 털지 않는다. 이 집 저 집 지켜보다가 터는 것이다. 삼마도 마찬가지다. 삼마가 많이 있는 밭이 따로 있다.

특히 일반 삼마와는 잎 모양이 다르고 천남성 모습과 비슷한 뱀삼마는 뿌리가 컸다. 뱀삼마를 많이 캐면 캘수록 돈이 됐다. 그래서 뱀삼마가 많이 있는 밭을 찾으러 헤맸다.

▲삼마를 캐러 다니다 보면 길가에서 반가운 녀석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쇠똥구리다.

당시는 말이나 소를 방목하던 때였다. 그러니 길에는 쇠똥이나 말똥이 흔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쇠똥구리가 소개됐다.

어느 날 쇠똥구리를 길에서 발견했다. 이를 봉지에 넣었다가 이튿날 학교에 갖고 가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물구나무로 서서 뒷발로 쇠똥을 굴리는 모습이 신기하지 않은가.

사람은 따라 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쇠똥구리 한 마리에 100만원이 될 줄 몰랐다. 환경부 산하 멸종위기복원센터가 지난 2017년 쇠똥구리 50마리를 5000만원에 산다고 했으나 한 마리도 사지 못했다. 쇠똥구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멸종위기복원센터는 몽골에서 구입한 쇠똥구리 200마리를 제주를 비롯한 서식 적합지에서 복원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제주지역에서는 제주시 해안동과 노형동이 적합 판정을 받았다.

쇠똥구리는 대형 초식동물의 분변을 먹고 분해하면서 생태계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쇠똥을 묘하게 굴리는 이 녀석도 제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쇠똥구리 복원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사람의 시선으로는 기행으로 여겨질 물구나무로 서서 쇠똥을 구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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