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杞憂)와 우환의식(憂患意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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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전국적으로 시작된 올해 장마가 32일 만인 7월 26일에 끝났다. 행정안전부 집계로는 지난 9일부터 사망 47명, 실종 3명, 부상 35명의 큰 인명피해를 입었다. 예년과 비슷한 기간이었지만, 전국 강수량이 지난 2006년과 2020년에 이어 3위를 기록한 탓이라고 한다. 하지만 ‘참사’라는 말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중과부적’인 ‘자연재해’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어서다. 되풀이되는 “예견된 인재”라는 보도도 부끄럽지만, ‘문명화된 사회체제’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참사’라고 할 만하다.

문명화된 사회체제에서도 재난은 일어난다. 그런데 <논어> 팔일편에서는 문명화된 사회에 대한 신뢰를 이렇게 강조한 바가 있다. “동쪽과 북쪽 오랑캐(夷狄)에게 군주가 있다 하더라도, 중국 제후국(諸夏)에 군주가 없는 것과 비길 바는 못 된다.” 이 구절은 중국 중심의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 혼란한 사회상을 누구보다도 문제 삼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명화된 중국이 야만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데 대한 각성과 우려”로 보아야 한다.

공자의 이러한 각성과 우려를 학계에서는 “우환의식(憂患意識)”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주역> 계사전의 “역(易)이 일어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의 일인가? 역을 지은 이에게는 우환이 있었던 것인가?”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공자가 이렇게 물은 까닭은 조선시대 최고 역학자(易學者)로 손꼽히는 정약용이 지은 시 <담재에서 부친을 모시고 주역을 강론하며(陪家君於澹齋講周易)>에서 확인된다. “저 성인도 이따금 허물이 있는 법, 회한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네. 우환 속에 반드시 주역 생기고, 겸손으로 기르면 더욱 높아져.”

흔히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주역에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인식과 변화의 이치를 알아내어서 대비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물론, 사람마다 근심거리와 그 정도는 다르다. 기우(杞憂), 곧 기 땅에 살았다는 이의 근심은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에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근심하고 대비해야 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정약용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공자가 말한 ‘우환’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주역을 강연하면서 회한과 무지, 그리고 우환과 겸손을 나눈 것이다.

‘기우’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무지에서 비롯되어 회한으로 끝난다. 사후약방문은 쓸데가 없다. 전 우주와도 맞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의 희생은 뉘우치고 한탄한다고 해서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비해 ‘우환’은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이치를 찾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노력은 겸손으로 귀결된다. “비가 많이 내려도, 가물어도 걱정”이라는 것은 권력자가 스스로 ‘덕이 부족한 사람(寡人)’으로 낮춰 부르던 왕조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문명화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보통의 책임 의식’이 ‘우환의식’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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