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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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치자꽃이 질 때면 장마도 같이 걷힌다는 말이 있던데 누렇게 진 꽃들을 보니 곧 걷히나 보다. 올해는 홍수며 산사태 등 물난리로 곳곳이 힘들어하고 있다. 다행인지 여긴 불더위다. 낮에 다녀올 데가 있어 가족들과 함께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밭엘 잠시 들렀다.

밭 저쪽 담벼락부터 잡초가 터를 잡고 무성하게 세를 넓히고 있었다. 칡넝쿨과 함께 어떤 되바라진 녀석은 얼추 50년 세월을 이기고 서 있는 철쭉을 빙빙 감으며 겁 없이 나무보다 더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다. 넝쿨은 나무를 다 뒤덮을 기세로 높이를 모른 채 오르고 있다.

보는 순간, 얼른 손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마음이 조급해졌다. 잡초라는 게 보일 때 정리하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 따라 손과 시간을 훨씬 더 많이 요구하지 않던가. ‘보이는 것만이라도…’ 하는 생각에 손을 댔다. 웬걸, 칭칭 감으며 올라간 넝쿨을 떼어내려니 쉬 당겨지질 않았다. 일일이 자르고, 자른 것을 떼어내는 동작을 반복했다. 나무도 크지만 감고 있는 넝쿨은 더 단단한 게 질기다.

일에 진전은 없고 시간이 생각보다 꽤 걸렸다. 땀이 온몸으로 줄줄 내린다. 더운 날씨로 일도 안되는 데다, 습하고 우중충해서인지 풀모기가 소문 듣고 중무장한 채 사방에서 떼로 달려든다. 다음에 준비하고 오자는 말을 뒤로하며 나오는데 일보다는 덥다는 말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밥때를 넘기니 적당히 배고픈 시간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일답지 않은 일로 몸을 써서 그런지 밥맛도 입맛도 좋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있을 때다. 순간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음식을 먹던 동작은 급정지 되고, 모두는 일시 정지상태로 시선이 몰렸다. 밥을 먹다가 그만 혀를 씹은 것이다.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말은 했으나 아파서 눈물 날뻔했다. 그 와중에도 ‘천천히 먹으면 될걸 …’ 하고 경망스럽다 생각 들까 봐, 공연히 쑥스럽고 민망해졌다. 갑작스러운 일에 머쓱한 그 순간을 숨기고팠던 감정은 재수 없이 당했다는 생각으로 번지며 열 받고 있을 때였다.

모자란 반찬을 더 달라는 말에 아까 재수 없던 감정과 목으로 터지는 말의 묘한 접점이었을까. ‘있는 것에 그냥 먹으라’는 말답지 않은 말이 빽 하고 퉁명스럽게 튕겨 나갔다. 그 바람에 엉뚱한 사람들 감정까지 건드려 놓고 만 것이다. 아뿔싸. 엎어져서 또 코 깼다. 입 안에 상처는 쉬 낫는다지만 말할 때나 뭘 먹을 때면 아프고 영 성가시다.

밭도 애초 생각대로 둘러보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꼬여버린 말도, 일도, 감정도 애써 일진이라 우겨보기로 했다. 준비 없이 빨빨대며 힘만 뺐던 일도, 재수든 부주의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도, 감당해야 할 오늘이란 날의 운수고 무게라며 덮어놓느라 가당찮게 바빴다.

가끔은 애써도 애쓴 흔적 없고, 잘하고파 건드린 일들이 되레 아니함만도 못할 때, 혹은 생각과 달리 주제가 선명하지 못한 글이 쓰일 때도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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