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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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재릉초등학교 교장·수필가

유럽 여행을 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을 우연히 마주하곤 한다. 유명 관광지에서 기대하고 주문한 음식이 내 입맛과 맞지 않았을 때, 혹은 그곳의 사진이 기대만큼이나 아름답지 않음을 알았을 때 등등 일상적인 사소한 것들도 있지만, 그 나라 역사의 깊이와 스토리에 대한 발견은 깊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8월의 시작과 함께 제주4·3의 국제화와 독일 홀로코스트의 평화 인권교육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7박 9일의 긴 여정을 떠났다. 17시간을 날아 첫 일정인 베를린에 도착해 홀로코스트 기념물에서 받은 충격적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학살한 홀로코스트 희생자 600만 명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과 관련된 사건을 가리키는 그리스어로 ‘전면적인 파괴’를 의미한다. 인종, 민족, 종교 집단에 대한 대규모 학살과 학대를 가리킨다.

한차례 소나기가 멈춘 파란 하늘과 조형물 사이로 불어오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은 수많은 잠든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희생자를 상징하는 회색 콘크리트 조각은 크기와 높이가 조금씩 다르게 줄지어 누워있다. 높낮이를 다양하게 만들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닥도 평편하지 않으니 수많은 똑같은 사각 면을 갖고 있지만, 각각의 아름다움과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의 가스실로 향해야만 했던 처절한 사연이 단단한 벽면들에 갇혀 굳어있다.

무리 지어 정렬된 조각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강렬하게 내면이 끓어오르고 압도된다. 위에서 보니 마치 쓰나미가 몰리는 듯 물결 형태를 이루고 있다. 명령 한마디에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용히 콘크리트 사이를 걸어가 보았다. 한가운데로 들어가니 점점 콘크리트 벽면은 높아지고 감옥처럼 답답하게 느껴진다. 순간 방향을 잊어버렸다. 일행들도 안 보인다. 어디쯤 와 있을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혼자 버려진 느낌,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곳, 죽음이 다가오는 듯한 분위기. 차가운 죽음의 관을 손을 뻗어 만져본다. 위기와 압박감, 죽음의 공포가 가슴 깊이 전해진다.

직육면체의 콘크리트 사이로 구원의 빛처럼 한줄기 파란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이렇게 맑았었나, 이렇게도 푸르른 색이었던가…. 간절했던 그날의 하늘도 이랬을까? 죽음의 공간이자 기억의 장소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속죄와 과거를 되돌아보는 민족의 장소, 부끄러운 과거일 테지만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그들을 품고 있었다.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고….

아픔은 기억해야 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독일의 홀로코스트에서 배웠다. 제주에 도착하자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4·3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조건부로 통과됐다. 제주4·3도 평화·인권 세계사 속에서 당당히 보편화 미래화로 빛을 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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