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구상나무 숲, 비경을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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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질토래비 창립 5주년 및 총서 창간호 출판에 즈음한 한라산 특집

한라산에 자생한 특별한 식물…크리스마스트리 등 세계인의 사랑
타케 신부, 왕벚나무 등 원산지 밝혀…사라오름 산정호수 물의 향연
한라산 등정길에 길게 펼쳐진 구상나무 숲. 한라산에는 세계 최대의 구상나무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기후 변화 등으로 고사목이 늘어가고 있다.
한라산 등정길에 길게 펼쳐진 구상나무 숲. 한라산에는 세계 최대의 구상나무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기후 변화 등으로 고사목이 늘어가고 있다.

▲세계 최대·유일의 구상나무 숲

시선을 돌리니 백록담 북벽 아래로 펼쳐진 눈부신 풍경들이 보이고, 등정 길 주변으로는 고사목과 함께 구상나무 숲이 길게 펼쳐지고 있었다. 

마침 전망대에서 탄성을 자아내며 한라산의 비경을 바라보는 외국인 일행들과 조우했다. 그들도 구상나무 숲 주변으로 펼쳐진 풍광들이 매혹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쉬어갈 겸 그들과 인사를 나누곤 구상나무 숲 주변을 배경으로 하는 사진도 공유했다. 대전에서 일하는 아들이 스웨덴에 사는 부모형제를 초청했다 한다. 보름 동안의 한국체류 중 3일간 제주에서 지내는데 한라산 등정은 필수란다. 그러고 보니 그날 등정 길에선 외국인들도 곧잘 눈에 띄었다. 성탄절 장식목으로도 유명한 구상나무가 제주에서 군락으로 자라는 것이 외국인의 눈에도 꽤 볼만했던 모양이다. 

구상나무는 외국에서도 자라는 비슷한 종의 주목과 비자나무와는 달리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별한 식물이다. 학명이 아비스 코리아나(Abies koreana)인 구상나무의 한자명은 제주백회(濟州白檜)이다. 구상이라는 말도 제주어의 ‘쿠살’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한다. 쿠살이란 바다의 성게를 이르는 제주어로, 구상나무의 잎이 성게가시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구상나무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07년이다. 식물학자이자 신부인 프랑스인 포리가 서귀포에서 포교 활동을 하던 타케 신부와 함께 한라산에서 처음 채집한 나무가 바로 구상나무였다. 식물 사냥꾼이라 불리는 미국인 윌슨 또한 1917년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채취해서 세계에 알렸다. 그러한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윌슨에게는 우리의 소중한 자원을 수탈해 갔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뒤따른다. 윌슨에 의해 서양으로 건너간 구상나무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정원수로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을 받으며 지속적인 품종개량이 행해졌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나무가 되었다 한다. 

현재 구상나무는 한라산을 비롯해 덕유산, 무등산, 지리산 등지에서도 자라고 있다. 그럼에도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계 최대의 숲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구상나무 분포지역 중 한라산이 세계 중심지이고, 북쪽인 덕유산과 무등산으로 갈수록 그 개체 수가 적어진다’라고 말한다. 등반 코스 주변인 성판악과 관음사 사이의 넓은 지역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 숲이 한라산에 있어 제주가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등정 길 주변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구상나무 절반 정도가 고사목이 되고 있었다. 온난화 기후의 영향으로 한라산의 구상나무들은 금세기 안에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2012년 제주에서 총회를 열기도 했던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1994년 구상나무를 ‘적색목록(절멸 위기종)’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살아 천 년 죽어 백 년’이라는 말로도 회자되는 구상나무의 실제 나이는 100년 내외라고 한다. 

타케 신부
타케 신부

▲제주의 구상나무·왕벚나무 등을 세계에알린 사람들

1901년 신축항쟁(이재수 난) 1년 후 제주에 온 타케 신부(한국명: 엄택기)는 제주에서 13년 생활하면서 일본에서 온주밀감 13그루를 도입하여 서귀포 하논 분화구 능선에 심어 제주의 감귤 산업화에도 기여한 인물이다. 왕벚나무 자생지 역시 최초로 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상나무 등 수많은 나무와 식물을 채집하고 분류하여 제주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타게 신부는 또한 일본을 거쳐 1907년 제주에 온 포오리 신부(한국명: 방소동)와 함께 약용식물의 연구에도 공헌했다. 특히 1908년 관음사 부근에서 채취하여 유럽으로 보냈던 벚나무는 당시 베를린 대학 식물학의 대가인 케네 교수에 의해 일본 에도에 있는 요시노사쿠라의 한 품종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벚나무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음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틈틈이 제주에서 채집한 식물표본들을 유럽으로 보내기도 했던 포오리와 타케는 약용식물 연구로도 국내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타케로 명명한 제주 식물이 26종이고, 포오리가 9종이다. 

한편 1939년 일본의 저명한 식물학자 오수미(小泉源一)도 가장 아름다운 품종인 요시노사쿠라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을 인정했다. 즉, 제주도의 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국화로 지정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최근 한라산에 자생하는 제주 왕벚나무에 대한 전체 유전체를 완전 해독한 국립수목원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제주산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서로 다른 별개의 종(種)으로, 이에 관한 원산지 기원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사라오름 만수(滿水)를 보다

한라산신제를 지내고 하산 길에서 보는 풍경은 등정 길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성판악 코스로의 등정 길이 가파르지만 걸음 옮기기에 좋은 목재나 돌로 평탄한 반면, 성판악으로의 하산 길은 주변이 온통 울퉁불퉁한 돌길이다. 돌길을 평탄하게 다졌던 흙과 잔돌들이 폭우로 휩쓸려 간 결과로 생긴 현상일 것이다. 당국의 관심과 애정 어린 돌길 보수를 바라는 마음을 걸음에 얹어본다. 

사라오름 산정호수.
사라오름 산정호수.

하산 길 도중 명승으로 지정(2011년)되기도 한 사라오름 이정표가 보이기에 주저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등반하는 반절 정도의 사람들만이 사라오름 등정 길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숨은 듯 보이는 이정표를 놓친 모양이다. 이런 경관을 두고 신이 내린 선물이라 하던가. 최근 내린 비로 사라오름은 물로 가득 찬 산정호수가 되어 있었다. 통행로가 물에 잠긴 산정호수는 황홀한 물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었다. 쉼터전망대에 서서 한참 동안 하늘을 데칼코마니처럼 품은 산정호수의 비경에 빠져야 했다. 더욱이 이 지역은 제주 최고의 명당 터가 아닌가. 주변에는 적지 않은 묘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지만, 그날은 물에 잠겨 볼 수가 없었다. 해발 1,324m로 제주도의 오름 중 가장 높은 지경에 자리 잡은 사라오름은 분화구 둘레가 1200m, 호수 둘레는 250m이다. 호수의 깊이가 그리 깊지는 않아서 가물면 바닥을 드러내기도 한다. 

탐라순력도·제주삼읍도총지도·제주삼읍전도 등의 문헌과 지도에는 사라악(舍羅岳, 沙羅岳) 또는 사라봉(紗羅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화산송이가 바닥을 덮고 있는 사라오름은 신성한 곳을 뜻하는 고어 ‘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깊고 고요한 곳에 위치한 산정호수에 어울리는 이름 같다. 남쪽 전망대에 오르면 동쪽의 오름 군락과 서귀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는데, 통행을 막은 만수(滿水)가 ‘다음을 기약하라’라고 알리려는 듯 조용히 일렁이며 보는 이의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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