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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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은 입 밖으로 나오기 민망한 단어라며 서러운 푸대접을 받고 있다.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낙인찍혀 있고 존재감은 빛을 본 지 오래됐다.

허름한 박물관에 모셔진 신당은 주인 없는 쓸쓸함이고 청춘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라 피하고 도망간다. 곁에 두자니 귀찮음이고 멀리 하자니 ‘혹시?’ 하는 꼬리 무는 의심에 세모와 네모 사이 중간쯤 위치하고 있다. 용하고 영험했던 무당은 옛날에는 있고 지금은 도토리 키재기.

이쁜 얼굴을 가져야 인기 순위로 번호 안에 들어간다. 공부는 하기 싫고 거들먹거리면서 큰소리. 아는 척하면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니 돈벌이 부잣집 쌀밥 먹듯 싶다.

남의 아픔을 들어준다는 핑계이고 약점이다 싶으면 만병통치 굿을 들먹거리고 억지강요에 은근한 협박이다. 주고받자 계산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 모른 척은 한결같은 수법이다.

누군가의 바른말은 뒤에서 적을 만들어 내고 시기와 질투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 늦지 않은 후에 남과 다른 운명의 타고 나온 팔자는 막연한 사명감이고 책임임을 알아내자. 머리 깎은 스님은 본연의 임무와 마음의 정도가 있어 출발선이 다르고 알고자 하는 목표도 깨우침의 차이가 있으니 서로의 영역 밖 관심조차 멀리해야 한다.

윤찬씨는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데 장사꾼보다는 우직한 농부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무슨 잘못이 있는지 부인이 뭐라고 잔소리라도 하면 꼼짝 마라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비 먹은 구름처럼 심각한 얼굴로 찾아와서는 며칠 전 어머니 기일이었는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단다.

초에 불을 켜면 계속해서 꺼진단다. 그것도 한쪽에서만 분위기는 심각했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본 채 서둘러 끝을 냈는데 꿈에서 나와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시더니 무거운 걸음으로 가셨단다. 돌아가신 분이 뭐가 답답하겠는가. 묻지 않아도 답은 나와 있다.

자신의 유언(먼저 가신 아버지와 죽어서도 함께 하기 싫으니 납골당을 따로 하라)에 자식들은 대충 하자 넘어갔다. 살아생전 꽃 한번 피우지 못했다는 가슴 절절한 사연이자 죽어도 죽지 않았다는 마지막 절규다.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고인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기억하고 헌신과 희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야 하지 않겠냐 쓴소리 지적을 했더니 알았단다.

다음 날 외갓집 선산으로 모시는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늦지 않아 다행이다. 조상을 잘모셔 복을 받자는 의미보다는 천륜으로 맺어진 인연법을 소중히 하라는 나만의 깨우침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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