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바다와 월정리 해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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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어렸을 때 여름이면 오조리 ‘당머리바당’에서 자주 놀았다. 아이들은 멱을 감고 어머니는 보말고둥을 줍고, 아버지는 그물이며 대낚시로 어랭이(노래미)랑 보들락(배도라치)도 잡았다. 바위틈에서 솟아나던 지하수를 내 몸은 기억한다.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이 가득한 바다. 인류의 식량창고라고 여기던 바다가 죽어간다. 생명이 살아 꿈틀대는 바다에 산업문명의 쓰레기들을 쉼 없이 쏟아붓는데, 제아무리 너른 바다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녹색평론’ 가을호(183호)에 ‘월정리 해녀들의 끈질긴 싸움에서 배우다’라는 윤여일의 글이 실렸다. 카페촌과 쪽빛 바다로 이름난 구좌읍 월정리에 세워진 동부하수처리장과 관련해 벌어졌던 사건들의 기록. 1987년 월정리 해녀들은 북제주군청에서 사흘간 철야농성을 통해 분뇨처리장 공사를 막아냈다. 1997년 마을대표단 4인이 건설계획을 수용하고 도지사는 증설 계획은 없다고 약속했다. 2007년 동부하수처리장이 가동됐다. 2014년 하수처리량을 두 배로 늘렸다. 2017년 또다시 두 배로 늘린다고 하자 월정리 사람들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도시 지역인 삼양과 화북 지역 5만 인구가 배출하는 하수를 이곳으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주민이 적고, 군유지가 많아 사업 부지의 확보가 쉬우며, 저항도 약하기 때문에 하수처리장 증설을 이곳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으리라고 월정리 사람들은 생각했다.

월정리 주민들은 저항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용천동굴을 적극 활용해 땅도, 바다도 잃게 된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싸워나갔다. 2023년 1월 비대위가 해산되고 월정리미래발전위원회가 구성되며 제주도와 협의에 나서는 가운데서도 월정리 해녀들은 저항했다. 행정기관, 건설사에다 증설 계획을 수용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마을 내의 발전위원회마저 억압해도 해녀들은 굴하지 않았다. 마침내 6월 15일 제주도지사와의 간담회를 통해 기존 관할지역 하수 처리만 담당하고, 3·4차 증설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며, 2차 증설은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냈다.

월정리 해녀들의 싸움은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도시민에게서 해녀에게로, 육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희생 떠넘기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해녀들은 황폐해진 바다 밭, 산호들의 떼죽음, 낯선 물고기를 대하며 가장 민감하게 바다의 죽음, 육지에서 바다로 이어진 재앙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끝까지 싸운 것이었다.

한때 바다는 인류 식량의 무한한 보고라고 배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바다, 지구, 태양계, 이 우주마저도 무한하지 않다. 다큐멘터리 ‘인피니티: 무한의 세계로’(2022)에서는 천억 년쯤 지나면 은하, 행성, 블랙홀 같은 것도 분해돼 사라지고, 어떤 에너지원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우주가 유한한 시간 동안만 존재한다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와 시간에 비해서 생명의 시대는 한때에 불과하다. 무한을 생각하면 생명의 시간이 정말 찰나에 불과하고 우리가 가진 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우리의 뇌는 바다에서 온갖 혜택을 받고 있어서 그것이 무한할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바다가 주는 행복을 느낄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지 모른다. 심리학적 용어로 ‘디스카운팅 메커니즘’이라 할 이 사태를 조장하는 세력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바다가 없어졌다.”라고 소리치는 순간, 우리는 무한한 죽음 속에 잠들지 모른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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