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가 담벼락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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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더위가 유난을 떨던 팔월 막바지. 그날은 태양이 내뿜는 열기로 사방이 후끈했다. 죈 종일 꼼짝없이 돗자리 깔고 누워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움직임마다 꿈틀거렸다. 태양이 토해내는 열기에 바람도 몸을 사리는지 이파리 하나 까딱 않았고, 차 안 에어컨도 지쳐 힘들어하고 있었다.

소속된 한 봉사단체에서 봉사활동 가기로 약속된 날이다. 선약된 일에 10분만, 5분만 하며 미적거리다 보니,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차 안 땡볕에 가열된 쇳덩이 무게만큼이나 가두어졌던 공기는 문 여는 순간 열기를 뿜어댄다.

가는 곳이 한적한 곳에 자리해 있어서 달리는 동안 여름꽃으로 한창인 배롱나무가 대로변 따라 길게 서서 고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불더위에 저리 싱싱한 색감을 유지하다니 놀라웠다. 곁눈질하며 본 꽃구경으로 한참 동안 눈이 호강했다.

도착한 곳은 한 장애인시설로 그곳 생활자와 같이 하나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나만의 DIY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강사의 설명이 있었다. ㄷ 자형으로 미리 준비된 긴 탁자 위에 대상자와 봉사자가 나란히 앉았다. 그곳 생활자와 1:1로 작품을 만드는데 우리 일행은 보조 역할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필요한 재료를 받고 간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설명 들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양손잡이가 있는 쟁반 만들기였다. 손잡이 부분이 날카롭거나 우둘투둘 된 곳을 사포질하여 매끄럽게 만드는 작업을 먼저 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무의 질감과 사포의 질감 또, 사포질 전후의 느낌을 알아보는 과정도 프로그램의 주요 목적이란다. 같이 한 조를 이룬 대상자는 휠체어에 의지한 젊은 여자 대상자였다. 이렇게 저렇게 만드느라 애쓰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사포질하는 과정이 힘든지 자꾸 사포를 놓친다. 홈과 홈을 맞춰 끼우고 못을 박아야 하는 과정도 몸이 불편하다 보니 힘든 모양이다. 쟁반의 아랫면에 도안을 깐 후, 아크릴 물감을 찍어 붓으로 터치하여 완성하는 순서다, 몸이 불편해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했던지 씨익 웃는 모습으로 도움 요청을 대신한다.

마무리를 도왔다. 아크릴 물감 찍은 부분을 말린 후 완성해보니 꽤 고급지다. 완성품을 두 사람 사이에 놓고 즉석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으며 바라본 대상자 얼굴이 아까 이곳으로 올 때 보았던 배롱나무꽃처럼 환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멋쩍고 어색했는데 같이 작업하는 동안에 익숙은 걸까. 뭐라고는 하는데 소통이 잘 안되어 미안했다. 애쓴 만큼 잘 만들어졌다. 잘 만들었다고 지지해주며 엄지척 포즈를 취하자 좋아하는 모습이 마스크 쓴 입보다 눈이 먼저 좋다고 알려준다.

나오길 잘했다. 봉사라는 게 이걸까. 내 시간을 나눠 준 것뿐인데 주고도 마음 흐뭇하니 말이다. 주차장으로 발을 옮기는데 이웃한 담벼락을 타며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 아까 인사하고 눈을 거둘 때 마주하여 웃던 얼굴이 꽃과 많이 닮았다. 능소화, 그 붉음도 녹색과 조화를 이루며 각각의 얼굴마다 큰 웃음 가득하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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