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를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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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도평초등학교 교장·수필가

베를린 투어 2일째, 국가 의회의사당을 관람하고 도보로 이동하는 중 티어가르덴 공원 안에 있는 집시(일명 신티와 로마)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치 독일에 희생된 50만 집시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2012년에 세워진 기념물이다. 커다란 원형 형태의 조각물 안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연못처럼 보였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검은 테두리의 원형은 평등을 의미하고 가득 채워진 물은 집시의 눈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연못의 숲 사이로 연방의회가 보인다. 유대인 외에 장애인, 동성애자, 잊혀진 사람들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고 중요함을 알리기 위해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이곳에 추모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 왼쪽 길옆에는 희생자들 한 명 한 명의 사진과 함께 생애와 학살과정들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산책 나온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설명을 눈높이로 듣고 있다.

소수를 위한 노래였나? 어젯밤에 근처를 지나면서 음악 소리가 들렸는데, 작은 추모회가 열렸었나 보다. 수시로 추모제가 열려 희생자들을 기리고 역사를 반성한다고 한다. 물가에는 추모객들의 헌화 꽃다발이 빙 둘러 놓여있다. 물에 반쯤 잠겨 투영된 예쁜 꽃들은 그들의 삶처럼 처량하기만 하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집시(Gypsy)’라고 부르는 유럽의 유랑 민족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가진 소수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나치의 600만 유대인의 죽음은 ‘쇼아(Shoah)’로 기억되는 반면, 50여만 집시에 대한 집단학살은 아직도 이름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달고 있어야 했던 죽음의 꼬리표! 삼각형 모양의 뱃지가 연못 가운데 떠 있다. 누군가가 갖다 놓은 꽃이 검은 연못을 지키고 있다. 청동 테두리에 가두어져 비치는 푸른 하늘이 잔잔한 미풍에 여울져온다. 잔혹함에 가두어지고 짓밟히더라고 결코 지울 수 없었던 자유로운 영혼을 달래 준다.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돌들은 불규칙하게 박혀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죽음으로 끌려가야만 했던 수용소 이름들이 적혀있다. 죽어서는 저 검은 연못을 탈출하였을까? 가슴이 아리다.

검은 청동 테두리에는 유명한 ‘아우슈비츠’ 시구가 새겨져 있다. 가만히 읊조리니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던 고통과 슬픔이 강렬하게 전달된다. 역사의 참상을 기억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강렬하게 일깨워준다. 문득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로 바이젠’의 바이올린의 선율이 떠오른다. 독일어로 집시의 노래다. 집시들의 희로애락과 정처 없이 떠도는 유랑의 삶을 바이올린의 고도의 현란한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무명의 한 음악가에 의해 집시의 삶은 예술로 승화되어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받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도 모른 채 처절한 순간을 살았을 집시들의 생의 노래에 눈물이 났다. 먹먹한 마음을 접으며 숲을 나오니 발길은 브란덴부르크 뒷문 광장에 가 닿는다. 어젯밤에 보았던 광장은 또 다른 모습으로 활기가 넘친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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