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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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우리 아파트 일 층에 어느 노부부가 살고 있다.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마다 자주 만나는 분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주차장 주변을 돌며 늘 담배를 피우신다. 구부정한 허리와 휘청거리는 다리만 봐도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쯤은 대충 알 수 있겠다. 그럼에도 손 끝에는 줄곧 담배가 들려 있다.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 같은 건 아예 없으신 모양이다.

스물다섯 살이 되면 노화가 멈추고 일 년 후 죽게 되는 미래세계를 그린 영화가 있다. 그 세계의 화폐 단위는 시간이다. 노동의 대가도 시간이고 의식주 비용도 시간이다. 시간을 많이 가진 이들은 오래 살 수 있지만 시간이 제로에 이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숨이 멈추고 만다. 시간은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내일이라는 꿈을 꾸게도 했다. 이렇듯 시간에 쫓기고 쫓는 사람들.

그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커피 한 잔에 사십 분, 밥 한 끼에 두 시간, 대중교통 이용료 한 시간의 비용을 위해서.

모든 생활이 시간의 지배를 받다 보니 누구나 시간 구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부모에게 시간을 물려받았거나 사업으로 많은 시간을 확보한 이들은 좋은 차를 타고 고급 호텔을 이용하며 여유 있는 삶을 누렸다. 하루 숙박료 오 백 일을 계산하는 이들이 일 초의 시간이 모자라 목숨을 잃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자본주의 폐해를 지적한 영화는 돈을 시간으로 바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시간을 구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야 하는 그들의 입장과 대출 이자와 생활비로 잠 못 자며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지는 현실의 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대부분 시간과 돈의 연결고리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했다. 누구나 시간 안에 머물다 시간 밖으로 사라지지만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주차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할아버지나, 버스를 기다리던 아가씨가 느닷없이 목젖을 보이며 크게 웃는다면 자신의 시간을 행복으로 채워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시간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겠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면 더욱 좋겠다. 집안에 경사가 있는 이에게는 축하 메시지나 박수를, 가족을 잃어 슬픔에 처한 이에게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위로를 전한다면 기쁨으로 뿌듯함으로 또는 보람과 행복 같은 밀도 높은 감정이 시간을 가득 채울 것이다.

나의 시간은 요즘 감사함이다. 지난 여름 습하고 칙칙하던 날씨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한결 가벼워졌다. 심장이 뛸 만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셔도 모두 공짜여서 좋다. 호수 위 햇살에 비치는 윤슬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늘 공연장에서는 오늘도 구름 퍼포먼스가 열린단다. 창문을 열고 축제의 시간을 기쁘게 맞이해야겠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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