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아내는 게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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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카메라가 관람객들을 비춘다. 밑의 자막에는 그들의 모습에 대해 재밌는 댓글이 달리고, 포옹하라는 주문에 그들은 멋쩍거나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렇게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한 후 환상적인 마술쇼가 벌어진다. 순식간에 헬리콥터가 등장하고, 상자 속에 갇힌 미녀가 순간 이동을 한다. 

이은결의 마술쇼 ‘더 일루션-마스터피스’(예술의전당, 10.6.-10.22.)는 12년간 진행해 온 서사의 완결편을 구현한다.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라스베이거스 기술팀과 협업을 통해 전 세계 최초로 연출한 장면들은 제목 그대로 환상 그 자체다. 그런데 이은결이 세계적 마술사임을 증명하는 것은 기술을 넘어선 매직의 재해석, 평범한 일상을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마법인가를 담아낸 스토리텔링에 있다. 

  이은결의 서사는 이런 거다. 어린 시절 상상 속 세상에서 놀던 아이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놀라워하고 감탄할 수 있는 시선, 그것을 잃어버리고 우리는 현실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하늘을 나는 꼬마 관객, 알을 부화하려는 어른 관객 등의 모습을 통해 갇힌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을 한다. 

이은결은 “어쩌면 이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일상에서 말이죠.”라고 하며, 손가락을 이용한 일상의 매직과 야생의 아프리카 초원을 내달리는 동물들의 그림자놀이를 보여준다. “마술이 딴 데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살아내는 일상 자체가 마술이고 마법이에요”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 커버린 어른 넷이 마술쇼를 보고 난 후 치맥을 즐기며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를 관람하며, 도란도란 고향 이야기를 나누었다. 갓 돌이 지난 조카들, 취직을 준비해야 할 자녀들, 그리고 고향을 지키며 쇠약해져 가는 부모를 이야기했다. 특히 평생을 가족과 이웃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가슴속에 우울을 달고 사셨던 노모가 최근에 드러낸 슬픔을 이야기했다. 추석 갱을 끓일 옥돔을 사놓지 않았다는 말에 토라지고, 음식 나누라는 명을 바로 듣지 않는 며느리더러 욕바가지를 쏟아냈다고 했다. 남들 눈이 무서워 감추고 죽이던 슬픔과 우울이 어느 순간 도드라져 나온 이야기였다. 일상을 살아내는 마법을 유지하기 위한 노모의 투쟁담을 생각하며 나는 쓸쓸해졌다.

  그 마법 같은 일상을 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일중독에 시달리면서 희망을 갖고 기다리던 65세 이후도 평범한 일상, ‘좋은 삶’이란 도래하지 않는다. 돈을 벌어야 살겠기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자식은 성공하여 돌아갈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견뎌내지만 결국 풍수지탄(風樹之歎)의 현실을 맞이하고야 만다.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노동력이 소진되어 가는 과정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심은 상품과 화폐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직접적인 관계, ‘겸손한 공존’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생태민주주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길」)라는 강수돌의 주장을 곱씹게 한다. 인간다운 삶, 자연과 어우러진 삶, 평범한 일상을 흥미롭게 살아가는 마술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은결이 말하는 마법의 일상이 진정으로 마법처럼 흥미로울 수 있으려면 시스템의 변환을 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삶은 우리 스스로가 발견해야 하며, 연대하고 실천해야만 가능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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