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치 통합돌봄’과 ‘다니엘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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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영국의 평범한 노동자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이다. 그는 남에게 피해 입히는 일 없이 40년 동안 목수 일만 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다 사별하고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자 의사의 권유대로 일을 그만두게 된 그의 이야기는 생계를 위해 질병수당을 신청하면서 시작된다.

상담사는 상담 매뉴얼에 따라 겉으로 보이는 신체장애가 없는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고, 모자를 쓸 수 있는지 등을 묻는다. 정작 심장병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하던 다니엘은 결국 질병수당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는다.

구직수당이라도 신청하려고 하니, 심장병이 있는 노인에게 취업교육을 받고 구직활동을 증빙하라고 한다. 더구나 자신은 컴퓨터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연필 시대 사람이라며 항변해 보지만 수당 신청은 무조건 인터넷을 통한 행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다그침을 받는다.

고용센터를 들락거리다 지친 다니엘은 결국 상담사에게 얘기한다. “(수당 신청 과정에서) 나한테 돌아오는 건 수치심뿐이잖소, 그냥 내 이름은 명단에서 빼주시오. 이제 그만 하리다. 난 할 만큼 했소.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면서 가장 선진적인 복지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영국 복지제도의 이면을 꼬집어 호평을 얻은 이 영화는 지금 우리의 현실일 수도 있어 더욱 와 닿는다. 그리고 이미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되고, 그마저도 한정된 예산 때문에 효율성과 형평성을 따져 제공되는 복지서비스에 형식과 절차까지 더해 이용자의 권리와 인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늘 새롭게 다가온다.

민선 8기 오영훈 도정의 사회복지 핵심 사업인 ‘제주가치 통합돌봄’ 시범 사업이 10월 1일부터 시작됐다.

이 사업은 명칭 그대로 그동안 중복되거나 분절적이고 선별적으로 제공되던 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관리해 제공하고, 대상자 역시 도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통합되는 돌봄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시범사업 기간인 내년 12월까지는 가사와 식사, 긴급 돌봄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2025년 1월부터는 이에 더해 건강 의료, 주거 편의, 방역‧방충, 일시보호, 동행 지원 등으로 확대된다고 하니 돌봄을 통한 사회적 안전망이 더욱 촘촘히 구성되리라는 기대가 크다.

지난 10월 18일에는 ‘제주가치 통합돌봄’ 비전 선포식이 개최됐다. 그 자리에 함께하는 동안 ‘다니엘 블레이크’가 문득 떠올랐다. 영화 속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혹시나 이런저런 형식과 절차로 서비스 이용을 거부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제주가치 통합돌봄’의 시작을 축하하며, 부디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로서 오랜 시간 지속돼 어딘가 있을지 모를 우리 사회 ‘다니엘 블레이크’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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