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시민의 융합과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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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 논설위원

1998년 10월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게이조 총리 사이에서 서명된 지 25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사회 경제 문화의 폭넓은 분야의 양국 간 교류가 획기적으로 확대됐다. 한일 공동선언 25주년을 특집한 ‘아사히신문’(10월 8일 자)은 한일관계의 이러한 근접화를 “서로 융합하는 일상”이라 표현했다. K-문화 열풍이 일본 사회를 휩싸이면서, 일본의 젊은 세대는 동경이나 선망이 어린 눈길로 한국을 바라보게 되었고, 젊은 재일 한국인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의 상호인식 단절을 드러내는 데이터도 적지 않다. 지난 12일에 발표된 한일 공동 여론 조사 (‘2023년 EAI-겐론NPO 한일 국민 상호 인식조사’)에 의하면 한일 국민은 양국관계의 개선을 실감하면서도, 그러한 개선의 흐름이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 향상에 이어지지 않고 있는 양상이 밝혀졌다. 일본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는 한국인이 50%를 웃돌고(2022년 52.8%, 2023년 53.3%) 있는 데다 그렇게 응답한 한국인에 72%가 그 이유로 “한국을 침탈한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어서”를 들고 있다(2022년은 65.4%). 이는 지난 3월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한일관계의 극적 개선이 이루어진 데도, 한일간의 역사 인식의 단절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애당초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후 한일관계의 개선은 일제의 식민지 침탈에 대한 ‘도의적’ 책임의 확인을 바탕으로 하는 어쩌면 위태로운 균형 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대일 강경책을 벌인 것처럼 회고되는 역대 진보 정권도 역사 문제에 관해서는 도의적인 책임의 확인 수준에 머무는 자세로 일관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역사 인식을 둘러싼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아베(安倍) 정권 하에서 식민지침탈의 도의적 책임조차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가 정치사회의 주류로 부각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행정 부작위 헌법 위배’ 판단(2011년) 등을 계기로 식민지 지배의 법적 책임을 묻는 시민사회의 여론이 고조됐다. 이 균형을 깨드리는 데 결정타가 된 것이 2018년 10월의 강제징용 희생자에 대하여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을 규정한 대법원 판결이었다. 이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지배의 법적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시민사회의 호응도 컸다.

이렇게 보면, 2018년 이후 한일수교 이래 최악이라 일컬어질 만큼 격화된 한일간의 갈등은 위정자의 정책 판단을 넘어선 한일 두 나라 시민사회의 역사인식의 단절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현 정부의 융화적인 대일정책에 의해 한일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 겉으로는 개선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한일 시민의 진실 어린 상호이해나 융합에 이어지기에는 먼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일본 사회의 역사문제에 대한 불감증을 심화시켜, 일부 일본인의 뿌리 깊은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이나 반감을 온존시키고 있다. 이는 온라인 상에서의 헤이트 스피치의 증대 등을 통해 재일 동포의 일상을 위협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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