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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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 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숲길 모퉁이에 플라타너스 한그루가 서 있다. 몸집이 유난히 크다. 잎도 손바닥만 하다. 몸집이 크다 보니 먹는 양도 많다. 그래서 식량 생산공장 역시 크다. 커다란 잎이 그렇다. 지난 여름에도 생산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쑥쑥 자라는 몸집 때문이다. 그만큼 비축해야 할 식량이 많아서다.

그렇게 운영하던 공장도 영원하지 않았다. 위기를 맞았다. 뜨거운 햇볕 재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닥치면서 기온이 떨어졌다. 흐리고 구름이 많다. 그래서 더는 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없다. 그냥 막무가내로 돌렸다가는 비축한 식량마저 바닥날 판이다. 

설상가상 재료는 빠르게 고갈됐다. 버티지 못한 공장부터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모든 공장을 폐업했다. 식량을 만들었던 초록 제품도 끊겼다. 문 닫은 공장은 어느새 누런 갈색이 들어찼다. 쓸모없는 공장이 됐다. 떨켜를 만들며 하나둘씩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붙잡아봤자 식량만 축낼 뿐이다.

폐기 처분된 잔해는 나무 밑동으로 보내졌다. 수북한 잔해물에는 바싹 말라 뒤틀린 것도 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힘없이 나뒹굴며 뒤뚱 뒤뚱거리는 것도 있다. 이미 산산조각 가루가 된 것도 있다. 잔해들은 한동안 밑동 주변을 맴돈다. 지난날 땀 흘렸던 추억을 쉽게 잊지 못하는 듯하다. 이는 플라타너스가 운영했던 식량 공장의 흥망성쇠다.

플라타너스만 그렇지 않다. 요즘 한라산 숲에는 수많은 나무가 플라타너스와 같은 흥망성쇠를 겪고 있다. 땅바닥에는 폐쇄된 공장 잔해물로 넘친다. 그러함에도 나뭇가지에 남은 채 폐기 처분을 기다리는 공장도 많다. 그런데 나무는 폐기 전 공장을 지저분하게 놔두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정리한다. 아무리 쓸모없는 잔해물이라도 잿빛 공장으로 놔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나무는 한마음 한뜻 다양한 색으로 아름답게 단장한다.

그것은 절약의 산물이다. 폐쇄된 공장에서도 찾아보면 쓸 수 있는 물건이 많다. 그냥 버리면 아깝다. 그래서 나무는 마지막까지 꼼꼼히 점검한다. 쓸 수 있는 물건을 모두 회수한다. 질소·인산·칼륨 등 무기물질들이다. 이것들을 회수할 때는 잎 공장의 가장자리부터 점검해 점차 공장 전체로 넓혀간다. 그리고 회수가 끝난 곳은 색깔로 표시한다.

물론 색깔은 나무 종류에 따라 다르다. 나무마다 색소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당단풍이나 화살나무, 사람주나무는 붉은색이 짙다. 은행나무는 노란색이 짙다. 이것저것 뚜렷한 색소 없이 혼합된 색은 갈색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색들이 많다. 그래서 단풍은 나무의 절약 표시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감상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울긋불긋 단풍의 향연에 취한다. 깊어가는 가을과 떨어지는 나뭇잎, 물든 낙엽을 밟으며 많은 생각에 젖는다.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거나 쓸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욕심을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는 편안한 치유를 만끽하기도 한다. 마음 한구석에 무한한 서정을 담는다.

이는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단풍을 통해 마음 치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무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단풍은 수많은 일 중의 하나인 절약의 산물이다. 단풍놀이할 때만이라도 나무의 절약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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