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의 색다른 제주여행] 중국·필리핀·오키나와 잇는 일본군 전략 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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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신요와 카이텐, 송악산과 알뜨르 비행장

제주, 태평양전쟁 소용돌이 속
열도의 방패막으로 휩쓸릴 뻔…

평화로운 유채꽃 밭 위 아찔했던 
그 날의 역사와 남겨진 흔적들…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한 송악산 올레 10코스 전경. 송악산 일대는 일본군의 전략 거점이었기 때문에 연합군 상륙 1순위 목표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한 송악산 올레 10코스 전경. 송악산 일대는 일본군의 전략 거점이었기 때문에 연합군 상륙 1순위 목표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도를 펴 놓고 필리핀과 오키나와 그리고 일본 열도와 제주 섬 위치를 함께 들여다보자. 한반도 남쪽의 외딴섬 제주가 바람 앞에 등불이었던 80년 전 역사를 실감할 수 있다.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열도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될 뻔했다. 제주 섬이 태평양전쟁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가 피 흘릴 뻔했던 것이다. 

‘태평양을 뒤흔든다’는 뜻의 ‘신요(震洋)’는 일본군의 1인승 자폭 가미카제 보트의 이름이다. 성산 일출봉의 일본군 갱도진지에 보관하려던 기밀 무기들이었다. 이곳에 숨어 있다가 유사시 폭탄을 싣고 미 군함에 고속으로 돌진해 자폭하는 것이다. 하늘에서의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처럼, 패색 짙어가던 당시 일본의 마지막 발악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하마터면 제주도 전체를 생지옥으로 만들 뻔했던 역사의 흔적들이다. 

‘카이텐(回天)’은 1945년 봄 궁지에 몰린 일본군이 송악산 동굴 진지에 배치하려던 1인승 자폭 어뢰의 이름이다. 폭탄을 싣고 적 군함으로 돌진할 희생자를 고무시키기 위해 ‘하늘로 돌아간다’는 감상적인 이름을 붙였다. 연합군의 제주도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일출봉에는 1인승 자폭 보트인 ‘신요(震洋)’를 수십 기 배치했고, 이어서 송악산에 ‘카이텐’ 배치를 추진했지만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무위로 끝났다. 

성산 일출봉 진지가 섬의 동쪽 해안을 맡는다면 모슬포 송악산 진지는 서쪽 해안을 사수하는 구도였다. 송악산 둘레에는 모두 15개의 인공 동굴이 뚫려있다. 올레 10코스 후반에 송악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동굴 몇 개는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해안으로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당시 모슬포 해안은 연합군 상륙이 가장 유력시되던 1순위 지점이었다. 해군 항공대 비행장을 포함해 일본군 주요 기지들이 송악산 주변 등 대정읍 일대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상하이와 난징 등 중국 대륙은 물론 필리핀과 오키나와 같은 태평양 전선과도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일본군 전략 거점이었던 것이다. 

섯알오름에 위치한 일본군 고사포 진지.
섯알오름에 위치한 일본군 고사포 진지.

올레 10코스는 송악산 다음으로 최남단해안로 길 하나를 건너 섯알오름으로 이어지는데 고사포 진지의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을 지난다. 바로 옆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알뜨르 비행장을 사수하기 위해 구축된 다섯 개 대공포 진지들이다. 중국 침략을 준비하던 일본은 1930년대 초반부터 제주에 군용비행장 건설을 추진해왔다. 현재의 제주국제공항 전신인 정뜨르 비행장을 비롯해 제주 섬에 다섯 개의 크고 작은 비행장이 건설됐는데, 그 중에서 이 곳 알뜨르 비행장이 전략적 위치 면에서 가장 중요했고 따라서 규모도 가장 컸다.  

1937년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알뜨르 비행장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난징(南京)을 폭격하는 일본 공군의 핵심 기지로 활용됐다. 중국 대륙과 가장 가까운 규슈의 나가사키에서도 난징까지의 폭격기 왕복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직선거리의 중간에 위치한 제주 알뜨르 비행장은 급유와 점검 등을 위한 중간 기착지로서 천혜의 요지였다. 
초기에는 20만 평 정도였던 알뜨르 비행장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에 이르러선 80만 평까지 확장되었다. 중일전쟁 당시에는 중국 폭격용이었던 비행장이 태평양전쟁 말기엔 ‘결7호 작전’의 선봉에서 가미카제(神風) 훈련을 포함한 일본군 최후의 결전장으로 변모된 것이다. 

서귀포 알뜨르 비행장의 돔형 격납고.
서귀포 알뜨르 비행장의 돔형 격납고.

지금의 알뜨르는 황량한 벌판과 주민들이 잡곡 농사짓는 밭들이 섞여 있다. 중간중간에 20여 개의 돔형 격납고가 야트막하지만 여전히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70여 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한결같이 원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군데군데 대공포 진지와 막사 건물의 흔적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상상해본다. 연합군 함대 수십 척이 모슬포 앞바다에 나타나 함포 사격을 해오고, 하늘에선 미군 폭격기 수십 대가 날아와 포탄을 퍼붓는 상황을. 송악산 진지 동굴 속에 숨어 있던 인간 어뢰 ‘카이텐’들이 물속을 질주해가서 미 군함 몇 척 정도야 폭파시키겠지만 새발의 피일 것이다. 모슬포 일대는 불바다가 되며 해안에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프닝 장면 같은 처참한 전투가 펼쳐졌으리라. 연합군이 상륙을 마치면 이 일대에는 일본군과 제주도민의 시체가 산을 이룰 것이다. 이어서 섬 전역이 일본 오키나와처럼 불바다가 되고, 마지막 남은 일본군 잔당들은 제주도민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워 중산간 오름들을 전전하며 결사항전했으리라.

아찔한 상상이다. 일본군의 결7호 작전은 옥쇄라는 미명하에 제주도민을 인질로 한 집단 자결 계획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원폭 투하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없었거나 늦어졌다면 이 섬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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