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제주 속살…예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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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가을의 전설, 억새와 바람 (上)

용눈이 오름, 2년간 자연휴식년제
은빛 물결 억새 펼쳐진 동산으로…

팬플루트·색소폰 선율,시낭송으로 
한라산 기슭에 깊은 울림 뿜어내다
이번 바람난장은 지난 10월 28일 낮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용눈이 오름에서 진행됐다.
이번 바람난장은 지난 10월 28일 낮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용눈이 오름에서 진행됐다.

“야호! 모여라.” 

오름을 오르던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얀 억새꽃이 눈부신 가을의 절정, 예술이 흐르는 바람난장이 용눈이 오름에서 펼쳐졌다. 바람난장은 바람을 몰고 다니는 게 맞는 것 같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바람의 언덕, 용눈이 오름 중턱에 무대가 자리했다. 여인의 몸매처럼 부드러운 능선은 오늘따라 더욱 빛나 보이고, 흐드러진 은빛 억새가 간지럼을 태운다. 저 멀리 아스라이 성산 일출봉에 맞닿은 수평선과 사방으로 에워 쌓인 높고 낮은 오름 군락들이 달린다. 다랑쉬와 손지오름은 한 뼘 지척에 있고 청보랏빛 한라산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련했던 시간들이 은빛 억새에 서걱거린다. 

팬플루트 연주가 서란영의 연주 모습.
팬플루트 연주가 서란영의 연주 모습.

오늘의 난장 주제는 가을의 전설, 바람과 억새다. 서란영의 팬플루트 연주로 <잊혀진 계절>이 서곡으로 울려 퍼진다. 어느덧 시간은 바람에 실려 잊혀진 계절이 돌아왔다. 벌써 10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가을의 명곡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헤어져야만 했던 연인들의 이별에 은빛 계절은 젖고 있다. 잊혀진 추억들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올해도 10월의 마지막 밤은 왠지 아쉬워만 간다.

오름에 오르니 가슴이 뻥 뚫린다는 바람난장 김정희 대표의 인사말과 함께 바람난장 식구들을 소개한다. 2주에 한 번 아름다운 제주 곳곳을 다니면서 재능기부로 공연하는 예술인들이다. 서로가 관객이 되어주고 연주가가 되기도 하고 스텝이 되기도 한다. 만능 엔터테이너들이다. 천혜의 아름다운 제주 속살을 낭만으로 추억하고 예술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다. 

시낭송가 김정희의 시 낭송 모습.
시낭송가 김정희의 시 낭송 모습.

김정희의 시 낭송, 강통원의 시 <제주 억새꽃>이 낭랑하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항거의 몸짓으로 
수천 수수만의 깃발을 흔들고 있는 
저것들은 대체 무엇이냐 
(중략)
가을 가고 
찬서리 내려도 
뼈에 사무치는 한 
풀길 바이없어 
눈보라치는 계절을 
창백한 표정으로 몸부림치며
우리를 원망하여 부르고 있는 것이냐
(중략)


은빛 물결의 억새는 오늘도 한라산 기슭 드넓은 산야 이르는 곳마다 무리 지어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능선 따라 끊임없이 깃발을 흔들며 어서 따라오라 한다. 지난 2년 동안 자연휴식년제를 보냈으니 풀 한 포기 흙 한 줌에도 성성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관광객들은 멀리서도 팬플루트 연주로 <푸니쿨리푸니쿨라>를 들으며 케이블카를 타듯 오름의 세 갈래 능선을 오르내린다. 능선들을 바라보노라니, 오름의 능선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능선은 더 없이 관능적이다. 잘록한 허리를 지나 다시 두툼해지는 엉덩이처럼 영락없이 여인네의 몸매다. 

색소폰 연주가 성동경의 연주 모습.
색소폰 연주가 성동경의 연주 모습.

하나둘 오름 등반객들이 모여들고 이어지는 무대는 성동경의 금빛 색소폰 연주가 화려하게 창공을 가른다. 

언 듯 언 듯 바람에 흰 머리를 날리며 청바지에 선글라스를 낀 색소폰 연주자는 한껏 멋 부려 돌아온 억새의 무법자다. 바람의 언덕 무대지만 오늘 공연 무대 콘셉트와 잘 어울린다. 멋에 취하고 자연에 취하고 낭만에 취한다. 

음악에 취한 저 능선 어느메쯤 길 떠난 소녀가, 억새 사이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 것만 같다. <숨어 우는 바람 소리> 색소폰 연주가 애잔하다. 밤을 새우는 여자의 이야기가 금빛 선율에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는 숨어 우는 바람 소리처럼 슬프다. 이 가을 다 가기 전, 둘이 손 꼭 잡고 걸었던 저 오름 능선 길에도 오늘 밤에 달이 차면 길 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은 돌아오려나. 

용눈이는 봄 여름에는 잔디가, 가을 겨울에는 억새로 덮이며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맞는다. 부드러운 능선은 사진작가들의 최고 사랑받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쯤 용눈이를 올라 보자. 한가로이 말들은 풀을 뜯고 구름과 노을빛은 환상적 풍광을 연출하며 포근히 오름을 감싼다. 

김용갑은 찰나의 빛나는 순간을 삽시간의 황홀이라 표현했던가. 

360여 개의 제주 오름 중에 특별히 용눈이를 사랑했던 그는 수없이 올라 그 순간을 두모악에 전시했다.

해발 247.8m, 세 개의 분화구 능선 따라 이른 시간부터 관광객들이 능선을 타고 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저 능선들도 우리의 삶이로구나.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슬픔도 기쁨도 있구나. 용눈이 오름은 우리네 인생을 닮아 내고 있었다.       

글=강미숙(수필가·도평초 교장)                           

▲사회=이정아 ▲시낭송=김정희, 장순자, 이정아 ▲노래=이마리아, 김익수 ▲팬플루트=서란영 ▲색소폰=성동경 ▲참여작가=조선희, 이창선, 강미숙 ▲사진=홍예 ▲그림=홍진숙 ▲음향=장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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