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자거려/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에는/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항거한 순국선열 이육사 시인의 ‘꽃’이다.
‘꽃’에 담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가 지난 17일 열린 제84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주제였다. 국가보훈부는 조국을 잃은 상황에서도 반드시 우리 민족에게 광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인용했다고 전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던 순국선열의 강인한 의지와 고귀한 헌신을 기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선정됐다.
▲이날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에 착수, 오는 30일까지 완료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독립전쟁 영웅실은 홍범도·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 이회영 선생, 안중근 의사 등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육사는 독립군과 광복군 역사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항일무장투쟁을 포함해 주요 시대별 국난 극복 역사를 학습하는 공간으로 확대·개편하려는 취지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독립운동유공자 단체들은 이에 반발, 독립전쟁영웅 흉상 및 독립전쟁영웅실 존치를 촉구했다. 이들은 “국방부가 한국군의 전사(前史)에서 독립군과 광복군의 역사를 지워버리려 한다”며 정부에 불필요한 이념논쟁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순국선열의 독립·희생정신을 계승하는 이날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 논란은 씁쓸하기만 했다.
순국선열의 날은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서 지청천·차이석 등의 제안에 따라 제정돼 이듬해 처음 거행됐다. 망하게 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혹은 망한 국가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비분 또는 용감히 싸우다가 순국한 이들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11월 17일은 실질적 망국 조약인 을사늑약 체결일이다.
순국선열을 우러러 기리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일은 누구도 해선 안 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게 논란을 종식시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