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 아주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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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전, 작가·방송인

그야말로 ‘사노라면’ 별 일을 다 겪는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지하철 경로우대권을 사용하지만 5년 전 교통카드를 사용할 때의 일이다. 잔액이 다 돼 교통카드 충전기 앞에 갔는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내 순서에 이르렀는데 연신 실패다. 몇 번씩 반복되니 뒤의 젊은이가 ‘아, 영감님 쫌!’ 하면서 화를 낸다. 무안함에 줄의 맨 뒤로 가 자세히 보았더니 이런! 손에 든 게 교통카드가 아니라 항공사 카드가 아닌가?

또 얼마 전의 일이다. 서울 다녀오는 길에 춘천에서 버스를 내렸다. 마침 점심 때라 근처에 있는 구내식당에 갔는데 카운터 앞에 정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자 별 생각 없이 지갑을 꺼내 들었는데 오 마이 갓! 카드만 있고 현찰이 없다. 밥값은 5000원에 불과했지만 현찰만 되는 곳이었다. 아무리 뒤져도 1000원짜리 한 장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교통을 타거나 커피를 마시면 모조리 카드로 계산하다 보니 현찰이 없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내가 당황해서 머뭇거리는데 뒤에서 ‘아, 거 좀 빨리빨리 합시다!’라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원래 밥 먹으려고 줄 서면 마음은 더 급해지는 법이니 왜 안 그러겠는가? 더 지체하다가는 기다리다 성난 뒷 사람들이 ‘돈도 없으면서 왜 그러고 있어?’라고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주인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현찰이 없으세요? 그럼 먼저 밥 드시고 다음에 올 때 계산하세요!’란다.

처음에는 두 귀를 의심했다. 식당 주인이 손님에게 돈 없으면 밥 먼저 먹고 돈은 다음에 내라니. 이게 요즘 세상에 가당키나 한 말인가? 주인이 두 눈 뜨고 지켜보는 데도 계산않고 먹튀하는 세상인데 도대체 나를 언제 봤다고?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돈 없으면 저리 비키세요’라며 망신을 준들 아무런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주저 없이 내 체면을 지켜줬다.

요즘 같은 불신 시대에 이 얼마나 큰 믿음이며 배려인가? 돈 안 내고도 밥을 먹었다는 사실이 신기한 게 아니라 길게 줄 선 사람들의 싸늘한 눈초리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구해줬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다. 그날 5000원짜리 백반을 먹으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사실 현대인들은 너무나 똑똑해서 한순간도 빈틈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게 사는 일이 많다. 블랙박스를 보여주는 방송을 보라. ‘빵!’하는 경적 한번 울렸다고 흉기를 들면서 위협하는 인간도 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나?’라며 비난하지만 나는 얼마나 남을 배려하며 여유를 갖고 살았는지는 의문이다.

글 쓰고 강의하고 방송도 하며 나름 배우고 깨달은 사람처럼 행세해도 돌이켜보면 사돈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다. 사실 나도 운전하면서 누군가 급하게 추월하면 욕할 때가 있다. 왜? 남을 배려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는 ‘맨날 당하고만 살 것 같은 위기감’이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춘천에 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그 기사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사실 행복하게 사는 이치는 간단하다. 내가 먼저 남을 믿으면 되고, 남을 배려하면 된다. 그러면 남들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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