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반 울음 반
웃음 반 울음 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남편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데 힘이 드네요. 젊었을 때부터 외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속을 끓이더니 늙어 기댈 곳이 없으니까 염치없이 들어와서는 눈칫밥 먹더니 제 버릇 누구 못 준다고 주변의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했고 자식들도 보기싫다고 외면하니 동네가 다 창피하고, 또 엄한 일로 트집을 잡아서 매일 싸움이에요. 솔직히 저도 가정 있는 여자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 부끄러운 짓도 했지만 그게 제 잘못만은 아니잖아요. 구차한 변명 같지만 그때 당시에는 술 한잔이 유일한 친구였으니까요. 지나간 과거 왈가불가 따지고 싶지도 않고 나쁘다며 욕을 들어도 할 말은 없지만 환자 뒷바라지도 지쳐가고… 다행히 자기 몸 아낀다고 여기저기 보험을 들어 조금은 걱정을 덜었네요. 의식 없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도 괴롭겠다 양심에 찔리지만 언제 가셔도 후회는 없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어차피 피해 갈 수 없다면 모두를 위한 희생은 어떨까? 심사숙고 내린 결정에 지금의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부탁이다. 영혼의 입장에서 눈으로 봐야 하고 귀로 듣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침묵은 길어졌고 웃음과 울음은 반반이다.

부고를 들은 것은 주변 귀띔이고 당사자는 소식조차 없다. 충분한 이해와 받아들임이지만 최소한의 격식도 무시한 채 쫓기듯 장례를 치렀다는 후담은 사실 꾸지람을 들어야 한다. 잘가라는 이별 인사는 사치였고 득일까 실일까하며 계산기 두드리는 각박함은 인연의 연결 고리를 끊자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부부라는 허울을 쓴 채, 등 돌려 돌아선 사이였지만 지켜야 할 도리이므로 가슴에 먹먹함은 간직해야 한다.

복잡한 절차를 겪었지만 의외의 많은 액수를 수령했고 시댁 쪽에 형제들 명의로 돼 있던 땅도 보상 받아 없던 형편이 부자가 돼, 얼굴에도 마냥 웃음꽃이 가득해지며 가난의 티도 벗어났다.

그러더니 동네의 반장을 역할하며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구설에 휘말리더니 또 조용하다 싶다가 친한 척으로 갑자기 호들갑이다. 이유인즉 다리가 아팠는데 꼼짝없이 안방을 지키는 환자가 됐단다. 바깥출입은 물론 화장실 가기도 불편해서 덜컥 겁이 난단다. 의사도 수술을 해도 나아진다는 확신이 없다며 외면이란다. 칼로 고칠 수 없는 무언의 경고 치러야 할 대가이다. 똑같은 신세의 고통을 주겠다는 망자의 마지막은 대놓고 전하기도 난처해 묻어 두고 있었는데 정확히 약속을 지킨 셈이다. 불신의 담을 허물어내는 게 우선이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49재, 천도재의 화려함보다는 함께 있어 고마웠다며 눈빛을 나눠보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