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뽑은 순우리말 사전'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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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전 오현고 고영천 교장 선생이 ‘가려 뽑은 순우리말 사전’을 엮기 시작한 게 2017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때 ‘펴내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작년 5월 어느 날, 큰 손녀가 카톡으로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한 장은 ‘제주어말하기’ 동상을 받은 상장이고, 또 한 장은 제38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실시한 교내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백일장’에서 금상을 받은 상장이었다. 일전에 ‘개구리’를 제주어로 설명해 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이후로 제주어에 관심을 가져서인지 ‘제주어말하기대회’에 참가한 사실만으로도 대견스럽고 흐뭇하였다. 따라서 책 읽기를 즐겨하고 글쓰기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큰 손녀에게 약속을 하였다. ‘우리말 유의어사전’을 만들어 주마고.”

두 벌 자손이 더 아깝다더니, 고 교장은 손녀 바보였구나. 손녀와의 약속이 순우리말사전을 엮는 엄청난 역사(役事)로 발전한 것. 대충 넘기거나 흐지부지하지 않았다. 몸에 밴 우리말 사랑이 얼마나 고집스럽고 결곡한지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찬찬히 톺아봤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외 14개 사전에서 순우리말 7689개를 뽑아내 관용어‧유의어‧방언‧속담 등 3250개 올림말을 수록해 이해를 도왔다. 문학 작품‧신문기사‧잡지‧방송 대본 등에 쓰인 간결하고 아름답고 세련된 문장 1만여를 예문으로 내놓아 글쓰기의 마중물이 되게 한 게 눈길을 끌었다. 착상이 신선한데다 수많은 어휘의 용례에 이르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년 퇴임한 지 막 십년이 넘었는데, 어간 쉴 새 없이 이 일에 매달려 온 게 아닌가.

헌데 뜻밖에 또 ‘가려뽑은 순우리말사전’을 받았다. 하드 커버인데다 책의 태깔을 온전히 달리한 모습이라 적이 놀란 게 아니다. 눈과 손이 잽싸게 책을 샅샅이 뒤적였다. 겉모습 못지않게 내용이 썩 달라져 있어 입이 다물리지 않았다. 눈이 오래 머문 곳이 ‘부록’이었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말 톺아보기에 이르러 놀라움이 극에 달하지 않는가. 음식, 바람, 비, 별, 달…일‧농사, 옷. 남녀 관계…. 눈이 멈춰버린 곳은 외래어 다듬은 말 톺아보기에서다. 깨알 같은 글씨로 한 장에 80어휘, 무려 83장. 모자란 걸 채우고 허름한 데를 한 땀 한 땀 기워 완벽하게 추슬러 놓았다.

쭉정이 하나 섞이지 않고 한가득 순 알곡으로 채웠다. 말 그대로 완결판이다. 서울 출판사와 연이 닿아 판로가 열리리란 기꺼운 귀띔이다. 그새 고 교장이 이 사전을 엮는 데 쏟은 재정이 얼마인가에 생각이 닿아 말문이 막힌다. 이제 이 사전이 방방곡곡 찾아가 순우리말에 목마른 이들의 타는 갈증을 축여 줬으면 한다. 2023년 577돌 한글날에 쓴 머리말 결미에 엮은이의 소망이 간절하다.

“바라건대 이 사전이 한자어와 외래어의 숲에서 벗어나 놀이하듯 재미있게 읽혀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적확하고 세련되게 표현하게 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가꾸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엮은이의 우리말 사랑이 곡진함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큰 일을 하셨습니다. 고영천 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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